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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동침

by 석담

주말에 있을 조부모님 산소 벌초와 주말농장의 배추 모종 방제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던 오후 2시 무렵이었다.

그 시간에는 전화하실 일이 절대 없는 어머니라는 세 글자가 휴대폰 화면에 뜰 때부터 불안은 시작되었다.


"너거 아버지가 빨래터 앞에서 쓰러졌는데 어느 병원으로 가야하노?" 겁에 질린 듯한 어머니의 목소리는 내 정신을 혼돈 속에 빠뜨렸다.

나는 무의식 속에서 차에 시동을 걸고 도로에서 꾸물대는 차들에 욕지거리를 쏟아내며 청도로 향했다.


본가에 거의 도착할 즈음 119라는 앰블럼이 선명한 전화번호가 휴대폰에 떴다.

그 여자 소방관은 놀랍게도 아버지의 체온이 39도를 넘었으며 코로나가 의심된다는 소견을 전해주었다.


어머니가 확진되고 나서 아버지도 감염되었으리라는 추측은 했지만 그게 현실로 되었다.

119 구급차 요원들은 청도에서 아버지의 코로나 확진을 통보받고 코로나 환자를 검사해 줄 병원이 없다며 대구의 병원으로 향했다.


다시 달려온 만큼의 거리를 달려 아버지가 계신 대구의 종합 병원의 음압 병실에 도착했다. 아버지는 얼굴 한쪽에 훈장처럼 새겨진 타박상 흔적을 빼고는 멀쩡해 보였다.

그렇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엑스레이, CT, 뇌 MRI 촬영까지 했지만 아버지의 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아버지가 쓰러진 이유가 코로나 때문이었는지, 고열로 인한 어지러움 때문인지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놀랍게도 의사가 오고 나서야 아버지가 제대로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당 의사는 며칠 입원해서 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가 다니는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의사에게 S.O.S를 띄웠다.

당장 대학병원에 와서 입원날짜 잡으라는 답변이 왔지만 일단 코로나가 끝나야 뭐든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당 의사는 아버지 옆에 보호자가 있어야 하고 일단 격리실로 옮기고 나서는 외부 출입을 절대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친절하게 전달하고 갔다.

시간은 이미 저녁 8시를 지나고 있었지만 아버지도 나도 아직 저녁을 못 먹은 상태였다.


생필품 산다는 핑계로 병원 앞 국밥 집에서 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해치우고 육식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수육백반을 포장해서 병실로 돌아왔다.

이제 감금 생활의 시작이라 생각하니 벌써 세상 밖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병실의 한 켠에는 장염 걸린 코로나 환자가 내일 퇴원이라며 한껏 들떠 있었다.

병실의 등이 한 개만 빼고 모두 꺼졌다.

아버지도 편안한 모습으로 깊은 잠에 드셨다.


어쩌면 이게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오지만 내일 아침에는 아버지가 허허 웃으며 걸어 나가시는 모습을 보고 싶다.

아니, 이 모든 게 꿈이고 내가 다시 깨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문득 아버지 곁에서 잠들어 보는 게 참 오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 소녀를 지켜주는 양치기 소년 같은 심정이 든다. 병원 창밖에도 그날처럼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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