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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꼰대가 되어 간다

by 석담

두 딸이 어른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미성년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 내 눈에는 어린애로, 응석받이 딸들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들이 그렇게 자라는 동안 나도 그냥 있지는 않았다.

말 많고 탈 많은 꼰대 영감이 되어가고 있었나 보다.


불금이 되니 큰 애의 사전 통보가 있었다.

오늘은 학교 친구 집에서 자고 온다는 이야기다.

나는 여전히 딸들의 외박을 탐탁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외박에 대한 불만을 톡으로 얘기했더니

딸의 피드백이 전광석화 되어 돌아왔다.

자기 나이가 몇이나며 이제 자기는 성인이라며 항변한다.


나는 어쭙잖은 용돈을 빌미로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라며 마지막 억지를 부렸다.

딸애는 용돈도 필요 없다고 자유롭게 살겠단다.

나는 더 이상 밀어붙이고 우길만한 무기가 없었다.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끝 모를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아내는 우군일 거라 믿었다.

그렇지만 아내는 우리 편이 아니었다.

딸에게 사과하라며 나를 나무랐다.

나는 죽어도 사과 못한다고 버티고 있다.

문득 어릴 적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엄마와 우리 자식들 사이에서 독불장군처럼 고립돼 있는 아버지의 모습.

내가 그 꼴이다.


내가 생각하던 자상한 아빠의 모습은 딸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동안 용돈 두둑하게 챙겨주는 아빠가 최고의 아버지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돈 보다 소중한 게 있었다.

'자유'였다.

구속받지 않을 자유,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 딸애가 추구하는 것은 자유로운 생활이었다.


문득 삼십여 년 전 내가 딸애 나이였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진정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너무 자유로워 자유가 아니라 방종에 버금갈 만큼 자기 통제가 안 되는 삶을 살았던 내가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꼰대가 되어 버린 내가 부끄러워졌다.


시대가 바뀌고 전통적인 사고와 가치관이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시대에서 나와 같은 꼰대 아빠는 힘들다.

항상 유연한 사고와 젊은 마인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큰 착각이었다.

지금부터라도 내 사고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꼰대 탈출을 위해, 아니 딸들과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지금의 나를 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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