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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쟁이 소녀

by 석담

나는 70년대에 국민학교를 다녔다.

부산의 바닷가가 보이는 산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월세방은 방음이 전혀 안돼 옆집의 베갯머리송사까지 실시간으로 들리고 아침에 공동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하면 골목에 줄을 서야 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6.25 때 얘기같이 들리겠지만 나는 그런 시대에 살았다.


우리 집 맡은 편의 성벽 같은 언덕배기 위에도 여러 채의 집들이 있어서 그곳에 사는 이들은 항상 우리를 내려다보며 생활했다.

좁은 골목길에서 놀다 지친 동네 아이들과 언덕 아래의 조금 평평한 곳에 앉아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노닥거리던 우리 패거리들은 쏟아지던 한줄기 물줄기에 기겁을 하고 언덕 위를 쳐다보았다.


"저기, 미친 거 아이가? 어디다 물을 뿌리고 지랄이고, 빙신아!"

우리들 중에 나이가 많은 우두머리가 언덕 위를 쳐다보며 막말을 해댔다.

욕을 얻어먹는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 나도 언덕 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얼굴살이 붙어 약간 통통해 보이는 단발머리의 그녀는 한 손을 주머니에 감추고 있었다.


"저리 안 가나? 여기서 와 시끄럽게 떠드노?"

그녀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그리고 획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는 나보다 서너 살은 더 들어 보이는 약간 억세어 보이는 외모의 소녀였다.

엄마에게 물어보니 술꾼 아버지와 단둘이 살고 엄마는 어려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어려서 팔에 화상을 입어 그때부터 왼쪽 손에 장애가 왔다고 했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그녀 집으로 김치전을 갖다 주라고 할 때까지 그녀와 마주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우리 집에서 언덕의 그녀 집은 지척이지만 계단을 따라 우측으로 우회해서 돌아가면 한참이 걸렸다.

나는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녀 집 앞에서 부엌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그녀는 다소 놀라는 기색으로 전해준 전을 받았다.

그리고 평상에 앉으라며 마실 것도 주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나는 좀 어색했지만 그녀의 그런 호의가 싫지 않았다.

그녀는 여상을 다닌다고 했다.

자기는 은행에 취직하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화상 입은 손을 떠올리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 중에 그녀의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온 그녀의 왼손이 내 눈에 들어왔다.

화상을 입어 반들반들 해지고 공처럼 둥글어진 그녀의 손.

나는 갑자기 그녀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손을 서둘러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나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동안 그녀를 잊고 지냈다.

그녀가 내 기억 속에 다시 소환된 것은 우리 또래 중 한 명이

그녀를 주먹쟁이라고 놀리고 병신이라고 욕을 하는 바람에 그녀가 언덕 아래로 던진 돌에 맞아 머리에 피가 나서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가 경찰서에 다녀왔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였다.


그리고 며칠 뒤 그녀가 이사 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나는 집 앞에서 까치발로 목을 길게 빼고 그녀의 집을 올려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계단 길을 올라 골목길을 돌아서 그녀의 집 앞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살림살이와 가재도구는 이미 그녀가 이사 가고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때 나는 보았다.

빨간 페인트로 그녀의 집 하얀 벽에 쓰인 글씨.

"철거"

그녀는 장애로 동네에서 소외당하고 무허가 건물에서 살다가 우리 동네에서 쫓겨난 불쌍한 소녀였다.

그 후로 나는 그녀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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