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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다 2

by 석담

작년 11월 내가 중학교 때부터 살았던 부산집을 팔고 부모님 댁을 청도로 옮겼다.

내 나름대로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배려한 특단의 조치로 생각하고 한 이사였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내 편하자고 한 일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때도 이사 이야기를 꺼냈을 때 아버지는 시종일관 반대만 하셨다. 합리적인 이유도 대지 않으시고 그저 반대만 하셨더랬다. 어머니와 나의 설득으로 이사는 했지만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은 감추지 않으셨다.


청도로 이사하시고 나서도 아버지는 생활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계셨다.

부산에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셨는데 청도에서도 한동안 교회를 부지런히 다니시더니 언제부터인지 그 교회도 발길을 끊으셨다.


아버지의 성격이 썩 사교적이 아니어서 이웃 영감님이 자주 찾아와서 손길을 내미셨지만 아버지는 통 마음을 여는 법이 없었다.

그저 마을의 이곳저곳을 혼자서 빙빙 돌거나 동네 중간에 있는 빨래터에 앉아 개울물을 헤엄치는 송사리 떼를 바라보는 게 유일한 소일거리 였다.


이사 초기에는 노인일자리도 신청하시고 의욕적인 생활을 계획하셨지만 퇴행성 관절염으로 장거리 보행이 불가능해 한번 가시고는 그만두셨다.


지난 8월 말 아버지는 코로나로 쓰러지셨다.

빨래터 앞에서 쓰러져 동네 사람이 발견하여 어머니가 놀란 가슴으로 내게 전화를 하셨다.

외로움에 사무쳐 동네를 배회하고 무료함으로 빨래터에서 송사리의 유영을 보며 위안 삼으시다가 39.5도의 고열에 쓰러지신 것이다. 구급차를 불러 대구에 있는 종합병원에 입원하는 지경에 까지 이르고 격리 병동에 간호하러 들어간 내까지 코로나에 감염된 아픈 기억이 있다.


동짓 날이 지난 며칠 전에 본가에 다녀왔다.

그날 어머니에게 가슴이 철렁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다.


"너희 아버지 혼자 부산에 방 얻어서 살 거란다.

바다가 보이는 부산으로 보내 달란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어머니의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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