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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목욕을

by 석담

아버지와 목욕을 마지막으로 갔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아득하다. 아마도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목욕탕은 항상 혼자 가던지 아니면 남동생이랑 둘이 다녔던 것 같다.


올해 여든다섯의 아버지는 관절염으로 보행이 불편하다.

그래서 주로 남동생이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을 다니곤 했다.

아버지에 대한 나의 무관심과 이기심으로 지금까지 목욕조차도 마음대로 가시지 못한 걸 생각하면 나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며칠 전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 때 아버지가 피부가 가려워 약을 지어 드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와 온천욕을 꼭 한번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늘은 아침 일찍 본가로 와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근처의 온천을 다녀왔다.

코로나에 대한 경계가 좀 느슨해진 탓인지 목욕탕 입구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회원가입을 하면 목욕료가 좀 싸다는 말에 서둘러 회원 가입을 하고 입욕권을 발급받았다.

남탕과 여탕 앞에서 어머니와는 이별을 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남탕으로 들어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좁아 보이는 어깨, 불룩하게 나온 배,

가늘어진 허벅지와 혈관이 불쑥 솟아 나온 종아리까지 모든 신체부위가 노인의 그것이었다.

노동으로 단단하게 단련되고 근육이 도드라져 보이던 젊은 시절의 아버지의 몸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젊음을 앗아간 세월이 무상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혹시라도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거나 넘어질세라 조심조심 목욕탕 안으로 인도했다.

온천탕이 남탕 2층에 있어서 아버지는 몇 번이나 탕이 2층에 있냐고 툴툴거리시며 어렵사리 입장했다.


나는 샤워장에서 비누로 간단하게 아버지의 몸을 씻어 드리고 탕 안으로 같이 들어갔다.

아버지와 목욕을 오기 전 오늘은 제대로 묵은 때를 한번 씻어 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세신(洗身)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탈의실에서 옷을 벗으시는 동안 나는 자판기에서 세신권을 구매해 두었었다. 난 열탕에서 아버지가 몸을 좀 불리기를 원했지만 뜨거워서 들어가기를 꺼려하셨다.

그래서 낮은 온도의 대중탕에서 10분쯤 몸을 불리고 세신을 받으러 갔다.


세신을 받으러 가실 때까지 아버지는 그 사실을 모르고 계셨다. 나는 혹시라도 구두쇠 성향의 아버지가 세신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순순히 응하셨다. 정말 의외였다. 당신이 이제는 스스로 목욕하는 게 버겁고 또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세신사에게 아버지가 다리가 불편하시니 잘 부탁드린다 말씀드리고 나는 아버지가 잘 보이는 곳에서 때를 밀며 혹시라도 있을 불의의 사고에 대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신 중에 목욕대에서 미끄러져 낙상이나 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세신사는 정말 열과 성을 다해 아버지의 몸을 닦고 씻었다.

마치 자신의 아버지라도 되는 듯 정성껏 세신을 했다.

한참만에 아무 사고도 없이 세신이 끝나고 한결 편안한 얼굴로 아버지는 다시 탕 안으로 들어가셔서 온천욕을 즐기셨다. 나는 세신사에게 거듭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온천탕 안에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지그시 감은채 편안히 앉아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왜 진작 더 일찍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에 오지 않았는지 자책했다.


아버지는 이제 완전히 목욕을 즐기고 계셨다.

온천탕에도 몇 번이나 들어갔다 나오시고 옥돌판에 누워 잠시 눈도 붙이셨다.

내가 그만 나가자고 몇 번이나 졸랐지만 조금만 더 하시며 나가실 생각을 안 하셨다.


그 시간에 어머니는 우리가 기다릴까 봐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나가셔서 내 폰에 부재중 전화까지 남기는 사태에 이르렀다. 입장할 때 목욕이 끝나고 만나는 시간을 약속하지 않은 결과이다.


목욕이 끝나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였다.

아버지는 가져오신 손가방에서 건강음료를 꺼내 한 개를 내게 주셨다. 평소에 즐겨 먹지 않는 비타민 음료였지만 나는 기꺼이 받아서 벌컥벌컥 마셨다.


온천 입구에서 어머니와 상봉하여 돌아오는 반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에게 큰 소리로 다짐하듯 말했다.

"다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아버지 모시고 온천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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