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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두 번이나 나를 속였다

by 석담

주말 농장을 시작하면서 농사에 필요한 소도구나 소모품을 구매하기 위해 쿠팡을 자주 이용해 왔다. 매달 4,900원의 회원료까지 지불해 가며 구매 목록에는 그 이력이 쌓이고 있다.


본가에 있는 TV가 얼마 전부터 비실비실 앓더니 마침내 그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AS를 신청했더니 고장이 나서 수리비가 더 나온다는 기사님의 설명에 부모님은 어두운 낯빛을 하고 계셨다


남동생과 통화해서 새 TV를 놔 드리기로 하고 70만 원대의 L사의 TV를 쿠팡에서 주문했다. 오늘 주문하면 내일 설치가 가능한 신박한 제품이었다.

비용은 동생과 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내일은 부모님이 새 TV로 연속극을 재미있게 보실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이튿날.

4시가 넘었는데도 상품준비에 멈춰 있던 배송 현황은 도무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다. 오늘 도착가능한지 문의를 했지만 명확한 답변도 없이 계속 죄송하다는 말의 반복과 확인해 보겠다는 영혼 없는 대답에 짜증이 났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니 몇 시까지 확인해서 답변하겠다는 문자가 왔는데 어이없게도 5시까지 확인해서 알려 주겠단다. 나는 물리적으로 이미 그날의 배송은 힘들다는 걸 직감했다. 택배가 아닌 설치인지라 적어도 6시 전에는 설치를 끝내야 하는 작업인데 5시에 확인해서 언제 설치가 되겠는가? 오늘은 포기하라는 얘기였다.


5시에 확인 문자가 왔다.

제품을 납품하는 대리점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황당한 답변과 취소를 하면 수수료는 나오지 않는다는 취소를 유도하는 듯한 문자가 왔다.


나는 L사의 TV를 주문했는데 그 회사의 배송시스템이 좋지 않아서 그런가 생각되었다.

그래서 불가능한 당일설치를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주문을 취소하고 S사의 TV를 다시 주문했다.

설 전에 TV를 부모님 댁에 놔 드리겠다는 약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새로 주문한 TV는 설 연휴가 끝난 후인 25일 설치 예정이었다. 이번에는 별 문제없겠지 하고 설 명절을 보냈다. 부모님은 TV 없는 무료함에 거듭해서 언제 TV가 도착하는지 묻고 또 물으셨다.


유보된 25일이 마침내 도래했다.

드디어 TV가 설치되고 저녁마다 TV 앞에서 연속극을 보시며 호호 하하 하실 부모님을 생각했다.

그런 생각은 잠깐이었다. 시간이 정오를 지나 오후로 넘어가는데 설치 배송을 위한 전화 한 통이 없었다.

나는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쿠팡 고객센터에 다시 전화했다.

역시나 미안하다는 답변과 다시 확인해 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화로 상담을 하니 자꾸 화가 올라와 고객센터의 일대일 채팅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전화보다는 확실히 분노조절이 되었다.


채팅 상담원은 확인하고 오후 3시까지 다시 답문자를 주겠다고 했다.

나는 오늘도 TV 설치가 물 건너갔다는 걸 직감했다. 오후 3시에 약속된 상담원의 전화가 왔다.


그녀는 제품 대리점에 확인하니 물류 이동 중이라 오늘은 설치가 힘들고 3일 이내에 설치 가능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나는 하늘이 노랬다.


결국 두 번의 당일 설치는 거짓말이 되었다.

상담원은 내일도 설치가 힘들 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는 동생에게 톡을 보내 내일까지는 설치가 힘들고 모레나 글피쯤 설치할 거라고 부모님께 전달하라고 했다.


동생은 속은 거 아니냐며 렌털을 하겠단다. 그리고 주문을 취소하라는 말도 거의 명령조로 했다.

나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TV 주문과 관련해 어떠한 고집을 부릴만한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의 마지막 선택은 주문 취소였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뜨거운 화가 끝없이 치솟아 올랐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공허한 눈길로 쿠팡의 주문 취소를 위해 고객센터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거대 기업의 횡포 앞에 초라해진 내 모습을 부모님이 보실까 부끄러웠다.


p.s

그들은 끝까지 나를 기만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취소 과정에서 취소 사유를 배송지연이 아닌 단순변심으로 나의 탓으로 돌렸다.

그리고 수정이 불가하다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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