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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에 미안한 하루

by 석담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출근길이었다.

6시 10분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나 샤워를 하고,

샌드위치를 토스터에 구워 버터를 발라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진한 드립커피 한잔을 텀블러에 담아 집밖으로 나섰다.


차 시동을 켜고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40분을 갓 넘어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류수민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아침 앤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을 목구멍으로 천천히 넘기며 서서히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나의 출근길의 루틴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김종배의 시선집중 1부가 시작한 후인 7시 15분 전후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월촌역 네거리에서 기어이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버스 뒤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내 차를 뒤에서 무엇인가 무지막지한 힘으로 밀고 내려왔다. 그 도로는 약간의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이었는데 나는 충격과 동시에 혼비백산하여 속수무책으로 앞으로 밀려 내려갔다.

나는 운전대를 있는 힘을 다해 부여잡고 브레이크를 밟아 보았지만 결굴 버스의 후미를 들이박고 말았다.

어깨에서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에서 내려

차 뒤쪽을 살펴보니 철판이 찢겨 종잇장처럼 구부러져 있었고 파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내 차를 충격한 차주는 50대인지 60대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 아주머니였다. 구분이 안 된다기보다는 내가 여자 나이를 짐작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그녀는 내 차가 출발하는 줄 알았다는 황당한 변명을 댔지만 나는 아마도 휴대폰 보느라 전방주시를 태만히 하다가 난 사고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독일제 W사의 승용차를 타면서 종합보험도 들지 않고 책임보험만 들었다는 것이다.


사고 현장 사진 몇 장을 찍고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차에 올랐다.

차는 아직 굴러갔다.

차를 운전해 오면서 지나간 사고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 차를 운전하면서 이번 말고도 두 번의 사고가 더 있었다. 모두 내 의지와 상관없는 비자발적 사고였다.


수년 전이었다.

그날은 오후 늦게 직원 한 명이 손가락을 다쳐 병원에 가는 바람에 뒤늦게 수습을 위해 병원에 가는 길이었다.

남대구 IC 톨게이트가 정체되어 비상깜빡이를 넣고 서행 중이었는데 제일 비싼 수입차 브랜드의 SUV가 내 차의 뒤를 타격했다.

그때는 서너 대의 차가 연쇄 추돌당해 그 SUV운전자가 엄청 곤혹해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내 차가 굴러가지 못하고 견인당했었다.


그리고 2년 전쯤 새로운 아파트 입주 계약을 위해 달려가던 중 신호위반 차량과 충돌했던 기억도 있다.

상대편 운전자가 끝까지 과실을 인정하지 않아 과학수사팀이 파견되어 시연해 보는 과학수사가 진행되고 결국에는 운전자가 즉결심판에 가서 재판을 받은 그런 상황까지 갔었다. 새 집 입주를 앞두고 액땜으로 치부하고 잊어버렸다.


더 이상의 원하지 않는 교통사고가 없길 바랐지만 오늘 아침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다.

내 차는 2010년식이다. 주행거리도 어언 22만 킬로미터를 훌쩍 넘기고 있다. 처음 아내가 몰다가 내가 이어받아 8년째 타고 있다.


나는 이 차가 내 마지막 차가 되길 원하지만 그건 어려울 것 같다.

세간의 화제가 된 미니시리즈 "더 글로리"의 주인공인 송혜교 배우가 극 중에서 탄 차로 색상까지 비슷해 회사에서 잠시 회자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내 애마는 지금 재활을 위해 정비소에 들어가 있다.

새롭게 단장하고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어쨌든 그녀에게 미안한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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