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농장에는 뱀도 더불어 살아간다 ㅠㅠ
주말농부일기(6월 3일 -4일)
토요일 아침 일찍 청도로 향했다.
목요일 많은 비가 내리고 그 여파로 이틀이 지났는데도 농막 앞마당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다.
오랜만에 맑은 공기와 화창한 날씨로 기분이 상쾌했다.
더구나 오늘은 할 일도 별로 없어 오래간만에 한가로운 주말을 보내리라 상상하면서 밭 여기저기를 탐색하며 다녔다.
농막 앞의 분홍 빛 낮달맞이 꽃과 노란 달맞이꽃,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꽃봉오리를 맺은 나리꽃까지
아직 끝나지 않은 꽃의 계절을 빛내고 있었다.
강낭콩, 단호박, 완두콩을 둘러보았다.
완두콩은 지지대를 만들어서 그런지 콩깍지가 엄청 많이 달렸다.
그 옆의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자라는 밭에 멈췄다. 올해는 브로콜리와 양배추가 정말 탐스럽게 잘 자라는 것 같아 뿌듯했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흰나비 피해도 없어 벌레도 거의 먹지 않고 잘 자랐다.
브로콜리는 이번주에 수확을 마쳤고 양배추도 다음 주나 6월 중순쯤에는 수확을 끝내야 할 것 같았다.
양파와 마늘도 수확이 목전이라 언제 수확할지 결정권을 가진 어머니의 명령만 기다리는 중이다.
마늘을 둘러보고 고추밭을 지나는 중에 개구리 한 마리가 인기척을 느끼고 멀리 튀어 달아났다.
비가 오고 난 후라 유달리 개구리가 많다고 느끼는 순간 발 앞쪽의 풀숲이 부스럭거렸다.
그리고 개구리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있는 뱀 한 마리가 빠른 속도로 하천변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뱀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장면은 생전 처음 목격했다. 거의 동물의 왕국을 라이브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돌아가서 장화로 갈아 신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으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았다.
나는 벌렁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짐짓 태연한 척 뱀과 눈을 마주했다. 뱀은 하천변 감나무 옆에서 천천히 개구리를 삼키기 시작했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 급하게 주머니에서 폰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충전 중이었다.
나는 뱀이 개구리를 삼키는 동안 뱀을 천천히 살피기 시작했다. 체색이나 무늬로 보아 꽃뱀이 분명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애들이 장난감 대신에 갖고 놀던 그 꽃뱀이었다.
정식 명칭은 유혈목이며 독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수년 전에 일본에서 어금니에 강력한 독이 있는 걸로 밝혀졌다.
유혈목은 식사를 끝내고 하천 아래로 사라졌다.
말이 하천이지 비가 오지 않을 때는 항상 말라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농사를 시작한 이래 세 번째 만난 뱀이다.
나는 뱀띠지만 뱀을 무서워한다.
아내에게 뱀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톡으로 보냈더니 청도 못 가겠다며 답장이 왔다.
오전에는 뱀 출몰 때문에 도무지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아 빈둥거리다가 처남이 2주 전에 심은 토마토에서 잘라낸 곁가지에 잔뿌리가 나왔길래 식재하러 밭으로 갔다.
여섯 개의 곁가지를 참외, 수박을 심은 밭 근처에 심고 물을 듬뿍 주었다. 그렇게 한나절이 후딱 지났다.
어머니가 차려 준 점심을 먹고 캠핑용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는데 점박이 새끼 고양이가 농막 앞 화단 속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공격자세를 취하기도 하는 게 보였다.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두 번째 뱀의 출현이었다.
나는 신속하게 한 손에는 폰카메라 한 손에는 뱀 잡는 집게를 들고 화단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그 화단에는 아내가 뱀의 출몰을 막겠다며 민트며 메리골드를 잔뜩 심어 놓은 곳인데 그것들은 정녕 뱀의 칩입을 막는 아무 역할도 못 했다는 말인가?
나는 화단과 상추밭 사이에서 집게로 화단을 툭툭 치면서 서 있었다. 잠시 서늘한 느낌이 든다 싶었는데 긴 뱀 한 마리가 내 앞에 나타나 내가 혼비백산하는 사이 상추밭 쪽으로 사라졌다. 5초 정도의 동영상은 찍었지만 혐오 영상이라 올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뱀 출현에 수훈갑은 새끼 고양이였다.
할 일 없이 사료만 축내는 줄 알았는데 뱀이 나타난 것을 미리 감지했으니 얼마나 기특한 놈인가?
두 번째 나타난 뱀은 누룩뱀으로 보였다. 역시 독이 없는 뱀이다. 그나마 독 없는 뱀이라는 걸 위안을 삼았다.
오전에 한 마리 오후에 한 마리, 뱀 두 마리 보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전동 가위를 들고 마당으로 나섰다.
혹시라도 뱀이 있을까 하릴없이 막대기로 하단을 툭툭 치며 미니사과 옆으로 다가갔다.
상추밭에서 개구리가 한 마리가 갑자기 튀어나와 놀랐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멘털이 좀 붕괴된 느낌이었다.
미리 사과가 열매를 많이 맺었는데 무수한 잎들로 인해 햇빛을 가리고 통풍이 불량해서 병이라도 생길까 봐 가지를 좀 치기로 마음먹었다.
사과열매 달린 가지를 두어 번 잘못 자르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가지치기를 마쳤다.
지난 5월 6일에 고추를 심었으니 거의 한 달쯤 됐다.
이제 뿌리도 활착 해서 잘 자라는 듯 보였다.
고추 상태를 보기 위해 나는 고추밭에서 꽃을 하나 잘라 꽃 속을 보았다.
점같이 작은 벌레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총체벌레였다. 총체벌레와 진딧물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매개체라 초기 방제가 중요하다.
해거름이 다 돼서 고추밭에 방제를 시작했다.
총체벌레약과 진딧물약을 잘 섞어서 고추 포기 구석구석에 촉촉하게 방제했다.
이제 하루를 마감할 시간이다.
어제 뱀의 출현으로 힘들었지만 이제 두렵지 않다.
우리 밭에는 많은 동물 가족들이 더불어 산다.
고양이 세 마리, 족제비 두 마리, 참새, 비둘기, 까마귀, 두더지, 그리고 오늘 등장한 뱀들까지.
모든 동물들은 다 나름의 존재 가치가 있으리라
나는 그 가치를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 가리라 다짐해 본다.
무섭지만 용감하게 ^^
사진 좌측부터 아래로 브로콜리, 일반 양배추, 자색 양배추, 꼬꼬마 양배추, 점박이 새끼 고양이, 고추꽃속의 총체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