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告祠)를 밥먹듯이 지내는 회사에 다녀요

by 석담

새 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 사저와 관련하여 한동안 역술인 천공과 풍수관상가 백재권이라는 분이 한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운명철학이나 무속신앙, 점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10년 전 새 차를 사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막걸리와 명태포를 사서 차 앞에 두고 고사를 지낸 일이었다.

그때는 많은 운전자들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 안전운전을 할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들 했다.

요즘은 새 차를 사도 그렇게 고사 지내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변화했다고 보인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큰 충격으로 와닿은 것은 회사에서 고사를 지내는 행위였다.

나는 관리부 소속이기에 고사 때가 되면 바빴다.

돼지 국밥집에 전화해서 고사머리를 주문해야 했다.

웃는 얼굴의 멀끔한 돼지 머리로 준비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오후가 되면 국밥집에서 고사 머리를 찾고 오는 길에 팥시루떡을 찾아서 돌아온다.

제사 때는 콩시루떡을 사용하지만 고사 때는 팥시루떡을 써야 하는 이유도 그때 알았다. 팥은 귀신을 쫓는 걸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사장님은 마트에서 천일염과 팥을 사고 제수용품을 준비해서 돌아오신다.

팥과 소금을 적당한 비율로 섞어 큰 대접에 담아 몇 개나 준비해 두면 고사를 위한 준비는 거의 끝난다.

잠시 후 소위 '법사'라고 불리는 초로의 노인이 도착했다.

내가 보기에는 평범한 농사꾼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대충 들어 보니 청도에서 버섯 농사를 지으며 철학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보였다.


고사를 위한 상이 차려지고 제사때와 비슷하게 "홍동백서"

"조율이시"의 순서대로 과일이 자리를 잡았다.

법사는 소금과 팥이 섞인 대접을 들고 공장 구석구석을 다니며 무어라고 중얼거리며 그것들을 뿌려 댔다.

고사 지낸 다음 날은 전 직원들이 마당에 떨어진 팥과 소금을 쓸어 내느라 진땀을 빼곤 했다


고사가 시작되면 직원들이 무리를 지어 네 번씩 절을 하고 갔다. 돼지 머리에 돈을 꽂는 것은 자유였지만 사장님 눈치가 보여 모두들 얄팍한 지갑을 털어 만 원짜리 한 장씩을 헌납했다. 몇 년 전부터는 사장님이 돈 봉투를 준비해서 직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종교의 자유는 존중해야 하는지라 교회 다니는 직원들은 절하는 것에서 자유로웠다.

고사가 끝나면 음식물을 나눠먹고 떡을 조금씩 얻어서 퇴근했다.


고사는 정해진 날도 없이 연중 수시로 행해졌다.

새로 회사를 개업하거나 이사하고 처음 지내는 고사였으면 어느 정도 이해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신년에 지내는 고사는 당연한 절차였고 일 년에 적게는 서너 번의 고사를 지내고 몇 년 전에는 거의 두 달에 한번 꼴로 고사를 지낸 적도 있었다.

내가 판단하기에 고사를 지내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이유였다.


첫 번째 목적은 기업의 매출 증대를 위한 고사였다.

고사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몇 년간 매출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매출이 올랐으니 사장님은 고사를 지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했다.

두 번째 중요한 이유는 안전사고 예방이었다.

공장에서는 가끔씩 안전사고가 났다. 작업자의 부주의가 주원인이지만 그것은 작업자 개인의 성격이나 성향과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고사를 지내고 나면 한 두 달 사이에 꼭 안전사고가 났다. 그런 현상이 몇 번 반복되자 직원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고사만 지내면 사고가 나는데 뭐 하러 자꾸 지내는데"

사장님도 그렇게 느끼신 걸까?

작년에는 일 년 동안 한 번도 고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동안은 한 번도 안전사고가 나지 않았다. 직원들은 고사가 없어서 그렇다며 고사를 지내지 않아서 다들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한 달전쯤 고사를 다시 지냈다. 나는 고사를 지낸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두 달 전쯤 세무조사를 맞고 엄청난 과징금을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번 고사 때는 법사 말고도 두 분의 여승이 참가했다. 그만큼 세무조사의 후유증이 컸다는 이야기 같아 쓴웃음이 났다.

앞으로 퇴직 전까지 몇 번의 고사를 더 지낼지 알 수없다.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에는 거부할 수 없는 고사의 소임을 그냥 묵묵히 수행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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