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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04화
중소기업 관리부는 이런 일도 합니다
by
석담
Aug 1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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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고령의 총리가 세계 잼버리 대회가 열리는 새만금의 화장실을 청소했다며 뉴스에 대서특필한 적이 있었다.
나는 코웃음이 났다. 그리고 혼잣말을 했다.
"쇼 하시네"
화장실 청소라면 이력이 난 내게 총리가 보여주기 식 화장실 청소 한 게 무슨 대수라고 뉴스 머리기사로 방송까지 내 보낼 일인가 싶었다.
물론 총리의 화장실 청소는 뉴스거리가 되지만 일개 회사원의 화장실 청소는 뉴스가 될 까닭이 없다.
나는 20년째 근무하는 회사에서 매일 아침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다. 7시쯤 회사에 도착하면 세제와 물뿌리개에 물을 가득 채워 외부에 있는 화장실의 소변기를 씻고 청소한다.
가끔은 막힌 화장실을 뚫는 것도 내 몫이다.
여름에는 그나마 수월하다. 겨울에는 얼어 터지기 일쑤라 얼지 않도록 밤새 수도를 틀어 놓기도 하고 소변기 있는 곳에 작은 난로를 켜두기도 한다.
그 화장실은 회사의 높은 분이 이용하는 곳이다.
얼어 터지기라도 하면 관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이유로 불호령이 떨어지기도 한다.
관리 부장의 하루는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이다.
우리 회사는 식품 포장재를 생산하는 곳이다.
그래서 공장 내부나 제품에 벌레나 비래해충(날벌레), 그리고 이물질의 혼입을 극도로 조심한다. 이물질이나 벌레가 혼입 된 제품은 바로 중대 부적합으로 취급되어 불량의 원인이 된다.
공장 근처에는 숲이 있고 논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모내기철인 5,6월이 되면 벌레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날아다닌다. 공장 내부에는 방역 업체의 관리를 받고 있지만 외부는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즈음이면 나는 바빠진다.
50리터가 넘는 약통이 달린 동력 분무기에 살충제를 희석해서 공장의 구석구석에 방제 작업을 한다.
거의 매일 마스크 한 장에 의존하여 방제 작업을 하다 보면
가끔씩 농약에 중독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생긴다.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올해 봄에도 치열한 방역을 마쳤다.
해마다 삼복더위가 되면 직원들은 무더위와 싸우느라 힘들어한다. 공장 내부는 기계에서 발생하는 열과 공조 설비 때문에 냉방장치가 맥을 못 춘다.
그때가 되면 나도 덩달아 바빠진다.
매일 큰 수박 한 덩어리와 각얼음, 그리고 설탕을 사서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의 냉방장치를 최대로 가동하고 수박을 갈라 먹기 좋게 잘게 썰고 설탕과 얼음을 섞어 시원한 화채를 큰 철제 대야에 준비한다.
30명이 넘는 직원들이 먹을 수박화채를 마련하여 국그릇에 일일이 소분하여 직원들을 호출한다.
직원들이 하나둘씩 식당으로 와서 시원한 수박화채를 맛있게 먹고 더위를 잠시나마 식힌다.
철제 대야의 수박화채가 바닥을 보이면 그릇들을 모아 설거지를 마치고 그날의 작업을 마친다.
올해도 나의 화채 만드는 작업은 삼복더위 내내 계속되었다.
keyword
화장실
청소
관리
Brunch Book
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02
회사에 조폭이 입사했어요
03
고사(告祠)를 밥먹듯이 지내는 회사에 다녀요
04
중소기업 관리부는 이런 일도 합니다
05
가족 같은 회사요? 그냥 웃지요.
06
열등(劣等)의 시대(時代)
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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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농사짓는 도시농부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사람의 향기를 찾아 산에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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