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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02화
회사에 조폭이 입사했어요
by
석담
Aug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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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장님을 모시고 전 직원 회식이 있는 날이었다.
지금의 송해 공원 올라가는 길 초입에 있는 오리구이 집의 한편을 빌어 전 직원이 모였다.
사장님의 지시로 건배 제의가 얼마나 오래 계속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마도 전체 직원들이 다 한 번씩은 건배 제의를 한 듯했다.
'위하여'를 시작으로 '개나발(개인과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진달래(진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 그리고
'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까지 그 당시 유행하던 건배사는 거의 다 나왔다.
어둠이 내리고 회식이 끝날 무렵 술자리가 아쉬운 몇몇 주당들이 2차를 가고 싶어 안달이 났다.
그들은 사장님께 애교를 부르거나 징징대며 2차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주장했다.
마침내 사장님은 못 이기는 척 지갑에서 카드를 내어주며
조금만 마시고 들어가라는 명(?)을 내리고는 들어가셨다.
영업과 조 과장이 재빠르게 섭외 장소를 알아보더니 회사 주거래 은행 근처의 D노래방이 물이 좋다며 그리로 이동하라고 종용했다.
우리는 택시를 불러 노래방으로 이동했다.
직원들은 대부분 귀가하고 임원 한분과 사무실 직원들 그리고 작업장의 부서장들과 몇몇 사원들뿐이었다.
노래방에 도착하자 이미 푸짐한 술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이크를 받아 든 직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목청껏 자기들의 18번을 불러대며 몸을 흔들었다.
술과 안주도 자꾸 리필되어 들어오고 전작이 있던 직원들은 어느새 흠뻑 취해 버렸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우리 도우미도 부르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잠시 후 2명의 짙은 화장 내를 풍기는 도우미가 입장했고
회사 직원 10여 명과 도우미 두 명이 한 몸이 되어 몸을 흔들어 댔다.
노랫소리와 음악소리로 노래방 안은 너무 소란스러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었다.
"철썩"
춤을 추던 B사원이 팔을 너무 과격하게 흔드는 바람에 신입사원 K의 볼을 치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귀싸대기를 때린 형국이었다. B사원이 미안하다고 사과할 틈도 없이 신입사원 K는 그에게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B사원의 동네 동생 C군이 신입 K의 콧등으로 일격을 가했다. C군은 동네 형인 B사원이 맞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주먹을 날린 듯했다.
순식간에 노래방안은 난리법석이 났고 회식 2차는 끝장이 났다. 모두들 노래방에서 쫓겨나 입구의 인도에 앉아 있거나 일부 직원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 싸움의 발단이 되었던 B와 C도 이미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었다.
나는 사무실 조 과장과 둘이서 노래방값 계산을 하고 현장 수습을 위해 남아 있었다.
K군의 코에서는 쉴 새 없이 코피가 흘러나왔고 도망간 B와 C를 잡아 오라며 난리를 피웠다.
그리고 그때였다.
그가 입고 있던 티셔츠를 천천히 벗기 시작했다.
어두운 가로등 불빛아래 그의 등에서는 꿈틀 거리는 용이 한 마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옷을 완전히 벗어던지자 그의 등에는 한 마리의 용 문신이 전체를 덮고 있는 게 확실히 보였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를 달랬다.
오늘은 그냥 집에 가고 내일 회사에서 의논하자며 달랬지만 둘을 잡아 올 때까지 꼼짝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코뼈가 부러진 것 같다고 했다.
콧등을 가격한 C군의 몸이 강호동급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한 시간쯤 그곳에서 죽치고 기다리던 K군은 그 둘을 직접 잡겠다며 나섰다.
그래서 나는 이제 대충 정리되었구나 생각하고 택시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중에 전화벨이 울렸다.
납품 담당하는 N기사였다. 1차 회식 장소에 대리 부르기 위해서 갔는데 K군과 마주쳐 주먹다짐을 하다 붙잡혀 파출소에 있다는 연락이었다.
빨리 와서 좀 빼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회식 후 다른 장소에 있던 임원과 차장에게 전화했더니
나보고 직접 가서 잘 해결해 보란다. 어이가 없었다.
나는 파출소로 가서 경위서에 확인 서명을 하고 N기사와 K신입사원을 데리고 나왔다. 그날은 거기 까지였다.
이튿날 오전에 사장님이 그날 있었던 사건의 전모를 듣고 노발대발하고 있는 사이 K군이 사장실에 난입했다.
제지하는 직원들을 조폭 특유의 카리스마로 제압하고 바로 사장실로 들어갔다. 부러진 코뼈는 붕대로 막고 있었으며 곧 복원 수술을 해야 한다 했다.
그리고 B사원과 C군을 내놓으라고 닦달했다.
사장님도 처음에는 큰 소리를 쳤지만 K의 기세에 눌려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려진 바로는 신입사원 K는 그 일대에서 알려진 조직 폭력배의 행동 대장이라고 했다.
그 후 K는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수시로 내게 전화해 B사원과 C군을 보내지 않으면 회사로 찾아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B사원과 C군이 결국 K를 찾아가 진정 어린 사과를 했다고 한다.
K는 퇴원 후 회사로 찾아왔다.
그리고 사장실에서 나올 때 그의 손에는 두툼한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그렇게 그는 퇴사했다.
그와 더불어 B사원과 C군도 동반 퇴사를 해야 했다.
하룻밤 파티의 결과가 너무 참혹했다.
몇 년 후 아내와 딸아이를 데리고 비슬산으로 놀러 갔을 때였다.
"김 과장, 오랜만이네요"
등 뒤에서 들리는 낯설지 않은 목소리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얼굴을 보고 K라는 확신이 드는 순간 가슴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짐짓 태연한 척하며 대답했다.
"응, 오랜만이네. 너도 잘 지내지?"
그도 아내와 딸을 데리고 산에 온 것이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 후 우리 회사는 한동안 전체 회식이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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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01
신발은 어디로 갔을까?
02
회사에 조폭이 입사했어요
03
고사(告祠)를 밥먹듯이 지내는 회사에 다녀요
04
중소기업 관리부는 이런 일도 합니다
05
가족 같은 회사요? 그냥 웃지요.
회사는 삶의 장이 아닌 전쟁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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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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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농사짓는 도시농부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사람의 향기를 찾아 산에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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