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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Sep 15. 2023

니 일하기 싫나?

어제 나는 지옥을 보았다.

한없이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을(乙)의 바닥을 보고야 말았다. 이 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원초적인 의문까지 드는 하루였다.


혹자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 않냐고 할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너무 멀리 왔고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이렇게 브런치에서 라도 떠들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은 현실 앞에 나는 대숲이 필요하다.

혼자서 마음 놓고 외칠 수 있는 그 대나무 숲 말이다.

그곳이 브런치가 되고 말았다.


한가로운 오후 시간이었다.

갑자기 사장(자칭 회장)이 2층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모두 나오라는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에 있는 나를 포함한 남자 직원들이  주춤주춤 사장을 따라나섰다.


우리가 이끌려 간 곳은 사무실 옆의 상담실이었다.

"상담실은 회사의 얼굴인데  청소도 안 하고 엉망으로 이게  뭐야?" 사장분노게이지가 거의  최고를 가리키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진 한마디는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자존심을 앗아 갔으며  내가 왜 이 회사를 이렇게  열심히 다녔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XXX들 일은 안 하고 월급은 꼬박꼬박 받아가제?

일하기 싫은 XX는 나가!"

그전에도 몇 번 들은 적 있는  욕설과 막말이라 별로 새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무게감은 상당했다.

어떻게  70살이 넘은 노인네의 입에서  저렇게 정제되지 않은 막말이 나올 수 있을까 의아했다.


상담실 안쪽에 안 쓰는 업무 파일과 서류를 모아 놓은 게 화근이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그렇게  무방비로 욕설과 막말에 노출되었다.

사장이 내려가고 우리는 주섬주섬 상담실에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옮기고 전시된 샘플을 정리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인사 드리러 간 나와 영업부장을 불러 세워 놓고 상담실 청소가 안된 것을 또 끄집어내어 뭐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정하겠다고 다짐을 하고서야  사장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영업 부장과 과장 2명이 상담실을 다시 청소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이 완벽하게 청소를 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신입사원 면접 중에 사장이 또  나를 호출했다.

상담실로 가보니 바닥 청소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영업부장이 바닥청소는 빼먹고 그냥 지나친 것이다.

면접 중이라 사장은 크게 나무라지 않으셨다.


그리고 오후 시간.

사무실에 사장의  전화가 왔다.

경리부장이 나를 바꿔주었다.

사장의  질책이 또 쏟아졌다.

이번에는 바닥 청소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쉴 새 없이 비난을 쏟아 냈다.

나는 이제 이런 막말에 익숙해져 보통은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는 편이지만 그것도 반복되다 보니  충격이 왔다.


그리고 결정적인 그의 히든카드 한마디는 꼭 대미를 장식하며 내 가슴을 후벼 판다.

"니 일하기 싫나?"

그 물음에 'YES'라고 마음속으로는 몆 번이나 되뇌지만

내 입으로는  '아닙니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흐린 눈 속에 가족들이 있었다.


어제는 정말 길고도 힘든 하루였다.

사장의 잔소리를 이겨내지 못한 한이사는 어제도 정신과에 약 타러 다녀왔다.

아직 퇴직이 5년은 남았다.

퇴직할 때까지 내 멘털을 잘 붙잡고 있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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