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작(多作)과 수작(秀作) 사이에서

by 석담

"형은 글도 좀 되고 하니까 브런치 함 해봐요."

대학 한 해 후배가 오랜만에 가진 저녁 술자리에서 솔깃한 제안을 했다. 브런치에 대해서는 언젠가 들어 본 기억이 났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문득 후배의 이야기가 떠올라 노트북을 열어 브런치를 검색했다.

버벅거리는 느려 터진 구식 노트북을 바라보다 지쳐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노안이 온 지 오래인지라 스마트폰 화면을 볼 때면 항상 안경을 벗어야 하는 게 귀찮기 짝이 없다.


뭔가 재미있는 글, 감동적인 글을 적어야 하는데 도무지 떠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날은 그렇게 전전긍긍하다 전화기를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잠이 들었다.


며칠 후, 어렵사리 한 가지 소재를 생각해내고는 머리를 쥐어짜듯 한 꼭지의 에세이를 만들었다.

그리고 호기롭게 브런치 작가 신청 버튼을 클릭했다.

며칠 동안 수없이 신청현황을 열어보고, 또 열어 봤다.

첫 술에 배부르랴. 보기 좋게 낙방이다.


휴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전의를 가다듬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또 한 꼭지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번에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두 번째 작가 신청을 했다.

이번에도 낙방이다. 전의를 거의 상실했다.


그만두려고 생각했다.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 단정 지었다. 브런치 작가 분들이 실로 대단하게 느껴졌다. 오를 수 없는 성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삼 세 번인데 한번 더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또 다른 소재를 찾아 여러 날 고민하고 한 달음에 써 내려갔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랬다. 내가 쓴 글을 내가 읽어 봐도 아무 감흥이 없는데 독자가 무슨 감동이 있겠는가?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반포기 상태로 브런치 도전기를 보고 있자니 글쓰기 강사가 두 번만에 브런치 작가가 된 사연이 눈에 들어왔다.

오기가 발동했다. 나는 글씨기 강사도 아닌 완전 초짠데 4수가 대수겠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나는 다시 도전의 불씨를 지폈다.


나의 목표는 뚜렷해졌다. 독자들에게 울림을 주는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내 삶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생각할 때마다 애틋해지는 어머니에 대해서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와의 슬픈 추억을 이야기로 옮겼다.

그리고 나는 당당히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그 후 한 달 동안 스물여덟 편의 글을 썼다.

거의 하루에 한 편의 글이 만들어진 셈이다.

이 시점에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나는 과연 진정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인가?

좋은 글은 생각이 넘쳐 샘물처럼 솟아나야 하는데, 지금의 나는 매일 한 편의 글을 짜내기 위해 맨땅에 샘을 파는 격이다.


브런치 작가가 된 지 한 달째.

나는 오늘 다시 나를 바로 세운다

다작(多作)이 아닌 수작(秀作)을!

오랜 고행의 순례길에서 만난 오아시스의 한 줄기 샘물 같이 달달한 글을 꼭 쓰고 싶다.










* 본문에 사용된 그림은 제 고등학교 동창인 이영호님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에 대한 모든 권리는 제 친구한테 있으니 불펌을 지양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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