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그분들

by 석담

"저는 성경을 훔쳤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야 고백합니다.

저의 어리석음과 뻔뻔함과 후안무치를 용서하십시오. 사십 년도 훨씬 넘은 유년시절에 저지른 저의 죄를 엎드려 사죄합니다."


크리스마스도 트리도 없었고 산타의 선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70년대 후반이었다.

크리스마스날 교회에서 주는 빵 한 덩어리는 내게 뿌리칠 수 없는 큰 유혹이었다. 5학년 때쯤으로 기억한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처음 교회에 갔다.


산복도로 동네에서 제일 높은 뾰족탑에 십자가가 달린 교회였다. 교단 앞에서 인사를 했었고 모르는 찬송가를 따라 부르기 위해 소리는 내지 않고 입만 벙긋거렸다.

등이 좀 굽은 처음 만난 집사님이 무척 친절하게 나를 대해 주신 기억이 난다.


매주 일요일 오전에 빼먹지 않고 교회에 갔었다. 그즈음 나는 주기도문까지 줄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찬송가도 몇 가지는 따라 부르는 경지에 도달했다.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그때 일을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합니다."


나는 '나의 사랑하는 책'이라는 이 찬송가를 좋아했다.

그렇게 두어 달 열심히 교회를 나갔다.


어느 날인가 교회에 있던 파란색 성경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른 손바닥 크기의 앙증맞은 책에는 신약성경이라고 쓰여 있었다.

신입회원이라 아직 성경책이 없었던 나는 엉뚱한 마음을 먹기 시작했다.


예배가 끝난 후 귀가하는 내 품속에는 그 파란색 성경책이 마치 내 것인 양 자리하고 있었다.

집에 오자마자 내 방으로 도둑고양이 마냥 숨어들었다.

그리고 성경책을 꺼내어 떨리는 손으로 첫 장을 펼쳤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마태복음 1:2)"


거기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글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나는 서둘러 성경책을 덮어 책상 깊숙한 곳에 숨겼다.

그날 이후 나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 없었다.

도둑질을 했다는 죄책감에 학교에서는 수업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집사님이 친구를 통해 몇 번이나 나오라는 연락을 해왔지만 나는 나가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나는 그 성경책을 교회의 원래 있던 자리에 조심스럽게 갖다 두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그것으로 넉 달간의 교회인으로서의 활동은 종지부를 찍었다.


오늘 사십 년 넘게 나 혼자만 꼭꼭 숨겨 온 성경책 도둑질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참회하는 것은 그것이 그 당시 내가 믿었던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의 권유로 불교학생회란 곳을 처음 갔다. 반야심경도 배우고 찬불가도 부르며 불교에 눈을 떴다. 수련회에 가서 삼천배를 하고 큰스님 앞에서 수계식을 하고 법명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불교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항상 부처님 오신 날에 절에 가서 등을 다셨다.

결혼하고 나서는 아내가 절에 가서 등을 밝혔다.

그리고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면 우리는 절에 간다.

가족의 건강과 행복, 승진, 합격 등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의 마지막 보루, 혹은 부적이라도 되는 듯 절을 찾는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구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면 가서 빌고 또 빌었다.


몇 해 전에 우리 부부는 주말마다 대구 근교의 사찰을 순례했다. 의성 고운사, 김천 청암사, 수도암, 합천 해인사, 청도 운문사, 사리암, 팔공산 갓바위까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많은 절을 돌아보았다.

갈 때마다 아내는 항상 108배를 한다. 아내가 내게 108배하라고 채근하면 나는 삼천배 한 몸이라며 허세를 부리곤 했다.


아버지는 부산에서 이사 오기 전 몇 해 동안 교회에 다니셨다.

평생을 종교 표시 난에 무교라고 쓰시고 교회라고는 문턱에도 가시지 않은 어른이 교회를 다니셨다는 게 내겐 불가사의였다. 종교적인 믿음 때문에 다니셨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교회 가시는 날에 아버지는 목욕까지 하시고 최대한 단정한 복장으로 가셨다는 얘기를 어머니께 들었다.


이제 내게는 누가 어떤 종교를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고 간절히 기도할 그분이 필요할 따름이다.

지난 사십 년 전에 내가 처음 기도했던 그 하나님이나 지금 내가 절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부처님이나 내게는 모두 소중한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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