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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세
by
석담
Dec 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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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방학 때면 외갓집에 갔었다. 외갓집 앞에는 외할아버지의 친척으로 내게는 아저씨뻘인 '아제'가 살았다.
외할아버지보다는 나이가 적은 듯 보이는 데 더 늙어 보이는 어른이었다.
그 집에는 항상 한자로 된 책이 여러 권 놓여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그게 토정비결이라는 이지함의 도참서라는 걸 알았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야 명리학이나 사주 관상이 통계학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국민학교 고학년이었던 어느 해 겨울방학, 나는 예년과 다름없이 외갓집에 놀러 갔었다
.
그때 앞집 아저씨 집에 들렀는 데 아제가 내게 재밌는 걸 가르쳐 주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몇 살이냐고 물었다.
내가 나이를 말하자 아제는 내 띠를 정확하게 맞혔다.
나는 신기해서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그 비결을 알려 달라고 졸랐다.
아제는 종이에 손바닥 모양을 그렸다.
그리고 손가락 마디마디에 12 간지의 동물들을 썼다.
"쥐, 돼, 개, 닭, 원, 양, 말, 뱀, 용, 토, 범, 소"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나이를 헤아리는지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다.
나는 그게 그렇게 신기하게만 보였다.
그리고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외할머니께 달려가 당신의 나이를 묻고 잠시 후 외할머니의 띠를 정확히 맞혔다.
할머니는 기특하다며 대견해하셨다.
그리고 몇 년 뒤에는 아제의 토정비결을 빌려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새해 운수를 봐 드릴 정도의 수준에 달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았던 사주팔자니 운세니 하는 것들이 다시 내 앞에 등장한 것은 아내와의 결혼 무렵이었다.
어머니와 장모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이 큰 문제가 없는지 부부로서의 인연이 괜찮은 지 이런 것들을 알아보러 다니셨다.
그럭저럭 문제없는 결혼 생활에 한동안 잠잠하던 무속신앙과 소위 철학으로 불리는 점집이 내가 병원 신세를 지던 암울한 시기에 역시나 어머니와 장모님을 통해 다시 소환되었다.
우리 가족은 올봄에 새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내와 나는 이사하기 전 이사 갈 집의 방향이 좋은지, 그리고 이사할 길일은 언제인지 이것저것 알아보았다.
그리고 최근 작은 딸의 수능일을 앞두고 우리는 기도라는 행위로 종교의 절대자에게 기원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내가 살아오면서 샤머니즘이나 무속신앙, 명리학 같은 현대 과학과는 덜 어울리는 행위들을 얼마나 하며 살았는지 곰곰 생각해 보니 풀어진 실타래 마냥 끝이 없다.
오늘 퇴근 무렵에 우연히 무료 운세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재미로 내년 운세와 평생 운세를 보았다.
그런데 나의 말년 운세에 눈에 띄는 풀이가 있었다.
"집필 활동을 하게 되거나 문학예술 분야와 관련된 소일을 하게 됩니다."
내가 브런치를 하게 될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듯한 운세 풀이에 아내는 '대박'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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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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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며 농사짓는 도시농부입니다. 남는 시간에는 사람의 향기를 찾아 산에 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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