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며

by 석담

은퇴를 '제2의 삶'이라고들 한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은퇴의 정의는 그랜트 사바 티어가 그의 저서 '파이낸셜 프리덤(Financial Freedom)'에서 설파한 그것이다.


"은퇴는 평생 다시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돈 때문에 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의미한다."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나서는 노후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퇴직 후에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낼 것인지 고민도 해 보았다.

그리고 대충이라도 그 그림을 그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설령 그 계획이, 목표가 어그러져도 크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니 다행이다. 할 일이 없어서, 소일거리가 없어서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가는 노인들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다. 오늘에서야 은퇴 이후의 나의 삶의 그림을 그려 본다.


우선 건강을 챙겨야 한다.

장수하면 좋지만 못하더라도 아프지 않고 살아야 한다. 노년에 아프면 그런 고통이 없을 것이다.

늙어서 병마와 싸우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이들을 많이 보아왔다.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남는 게 시간이라고 게으름의 늪에 빠져 리듬감이 결여된

마음 내키는 대로의 삶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리고 잘 먹어야 할 것이다.

잘 먹는다는 게 기름지고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제대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단을 짜서 직접 요리하는 부지런함도 필요하다. 집에서 마누라한테 삼식이로 낙인찍히기 싫어서라도 손수 해 먹는 습관을 기를 것이다.


또 중요한 한 가지는 운동이다.

이른 새벽 강가를 거슬러 산책하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물가를 헤엄치는 송사리와 하늘을 나는 이름 모를 새를 보면서 내 눈은 아직 쓸만하다고 자위할 것이며

먼 숲에서 들리는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내 귀는 아직 멀지 않았다고 다독이리라.


일주일에 한 번은 산에 오를 것이다.

그 산은 설악산이나 지리산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 집 앞의 앞산이나 청도 남산이면 어떠리? 아직 내 관절이 녹슬지 않았으니 나는 매주 산에 오를 것이다.

산 정상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지난날을 되새겨 볼 것이다.


낮에는 매일 농사일을 할 것이다.

우리 가족의 먹을거리를 만드는 심정으로 텃밭에서 농사를 지을 것이다.

돈 때문에 하는 일이 아닌 나를 위한 일을 할 것이다.

이미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한 농사라 이제 이력이 붙었다.

감자, 고구마, 땅콩, 콩, 옥수수, 상추 등 여러 가지 야채와 곡물을 심고 가꿀 것이다.

잡초를 뽑고 농약도 치면서 작은 텃밭이지만 농부처럼 일할 것이다.

가을에 얻는 풍성한 결실이 있다면 가까운 이웃과 나눔 할 것이다.


저녁은 독서를 위한 시간이다.

젊어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때로는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읽지 못했던 책과 씨름할 것이다.

그것이 소설이어도 좋고, 인문서적이어도 좋다.

공상과학이면 어떻겠는가?

잠들기 전까지 나의 독서는 계속되어야 한다.


취침 전에 나는 사색에 빠질 것이다.

그것은 명상이어도 좋고 참선이어도 좋다.

조용히 내 속에 침잠하여 그날의 나를 찬찬히 돌아볼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나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혼자여도 좋고 아내와 같이라면 더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그곳이 예전에 갔던 곳이라면 옛날의 기억을 되돌릴 수 있는 추억의 시간이 될 것이고 처음 가는 곳이라면 새로운 곳에 대한 신선한 즐거움이 있으리라. 여행지에서 나는 사진기로 많은 사진을 찍을 것이다. 놓치기 아쉬운 순간들을 모두 사진에 담아 둘 것이다. 이따금 한 번씩 꺼내어 즐거웠던 시간을 반추하기엔 사진 만한 게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한 가지가 남았다.

나는 매일 아내와 그리고 아이들과 대화할 것이다.

친구와 지인과도 틈틈이 통화할 것이고 이웃과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소통할 것이다.

그것이 곧 내가 살아 있음을, 아직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체감의 방식이다.

또한, 내 인생이, 내 삶이 계속되고 있음의 증거이기도 하다.











* 본문에 사용된 그림은 제 고등학교 동창인 이영호님이 스마트폰으로 직접 그린 작품입니다.

그림에 대한 모든 권리는 제 친구한테 있으니 불펌을 지양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