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 이상 예스맨이 아니다

by 석담

2004년 9월 13일.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날이다.

입사한 지 만 21년이 되었다.

희한하게도 입사 날짜는 잘 잊히질 않는다.


2003년 봄날 나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에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위기를 넘기고 퇴원했다.

두 달 넘게 병원 신세를 졌으니 몸과 마음은 약해지고 피폐해져 바로 일상으로 돌아오기는 힘든 지경이었다.


집에서 몸을 추스르고 정신을 다잡아서 이듬해 취업을 준비하여 마침내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회사 사장은 역시나 내가 바라던 내 스타일의 경영자가 아니었다.

내 가족 같은 회사라는 생각을 가지기는 힘들었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삶의 터전이라는 일념으로 20년을 버텼다.

이제 퇴직을 3년쯤 앞두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 나는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우리 회사는 식품 포장지 생산 업체라 제품에 날벌레나 이물질이 혼입 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다.

납품처와의 거래가 중단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며칠 전 인쇄부에서 인쇄 중에 다량의 벌레가 검출기에 검출되어 결국에는 그 제품을 폐기해야 될 지경이 되었다. 인쇄 기장이 제품생산을 중단하고 벌레를 제거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맞았는데 무시하고 그대로 인쇄한 것이었다.


나는 아침회의 후 사장실에 소환되었다.

사장은 폭발 직전의 표정으로 부사장과 생산이사와 함께 앉아있었다.

그리고 내가 들어서자마자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너희 집구석에서 이렇게 하냐"라는 힐난과 "개 xx"라는 쌍욕을 듣고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장님, 욕하지 마십시오."

"사장님, 막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렇게 끝까지 저항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가족에 대한 모욕은 정말 참을 수 없었다.


서둘러 사장실을 나와서 방역 작업을 마쳤다.

방역 작업을 하면서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구차하게 다니지 말고 때려치우자"

순간 가족들의 얼굴이 떠 올랐다.


방역작업이 끝나고 사장실에 갔더니 사장은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나의 행동에 대해 자신에게 개기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화가 나서 순간적으로 욱 했다고 답했다.

그리고 사장은 자신의 막말에 대한 해명을 했다.


화가 나면 욕설이 나올 수 있다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변명을 하며 결과적으로 내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해서 그랬다는 핑계를 댔다.

그렇지만 욕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저는 제 가족을 가장 사랑하고 아낍니다.

제 자신에 대한 비난은 달게 받겠지만 가족은 건드리지 마십시오."

회장실을 나오면서도 개운한 감이 없었다.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려고 지난 20년을 새벽잠도 못 자고 주말도 반납하며 출근했나 싶었다.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까지 들었다.

문득 작년에 퇴직했다는 대학동기가 부러워졌다.


어제저녁에 문득 아내에게 '그만 퇴직할까?'라고 묻고 싶었지만 아직 학생인 둘째 때문에 그냥 입을 꾹 닫고 말았다.

행복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이런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하는지 자괴심이 생긴다.


지난 20여 년 간 회사를 다니면서 어쩌면 내 마음속에는 항상 사직서를 품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사장실에서 항상 왜소해지는 내 모습에 나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사업주의 부당함이나 표리부동함에도 못 본 척으로 일관하고 그가 시키는 일에 오로지 "예, 예"하며 살아온 지난날의 삶이 지금은 후회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내가 "NO"라고 외쳤나 보다.


나는 이제 나로 살기로 했다.

그저 '예스'만 남발하는 예스맨이 아닌 내 목소리를 내는 삶을 살아 보려고 한다.

나의 삶이 고단하고 힘들어도 그것은 어차피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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