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주말농장 농막의 데크 앞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어스름한 저녁 풍경을 보는 시간을 좋아한다.
농막 안에서는 지지직 거리는 낡은 전축에 걸린 LP판에서 ABBA의 음악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의자 옆 탁자에는 싸구려 레드 와인도 한잔 준비되어 있다.
청도천 건너 마을의 불빛은 검은 바탕에 밝은 파스텔톤의 물감을 뿌려 놓은 듯 아름답다.
멀리서 가끔씩 차들의 엔지소리와 오토바이의 소음이 들리기도 하지만 끊이지 않고 밤을 지배하는 소리는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의 울음소리이다.
오늘도 주말농부로 하루를 살았다.
과실나무에 약을 치고 이제 완연한 생동하는 초록빛의 고추 입사귀에도 총체벌레약과 탄저병 약을 뿌렸다.
옥수수에는 웃거름을 주고 잔디밭의 헐벗은 곳에는 추가로 잔디를 심었다.
뙤약볕 아래서 20L 말통을 매고 농약을 치는 작업이 이제 버거울 나이이다.
가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내 노래 같았는데 어느새 환갑이 되었다.
이제 노인이 되는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내가 늙어 가고 있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은연중에 느끼며 살고 있다.
회사에서는 젊은 직원들에게 소외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 그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연장자라는 이유로 선배 대접을 깍듯이 해주고 또 선배 노릇을 톡톡히 했었다.
이제는 아니다. 그냥 배척당하거나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다음으로 느끼는 것은 몸이 노화를 경고한다는 것이다.
젊은 날에는 늦게 잠들거나 취침시간이 일정하지 않는 생활을 밥 먹듯 했다. 이제는 아니다.
나는 매일 저녁 10시만 되면 잠자리에 든다.
그 시간에 잠들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되면 잠이 오고 눕고 싶어진다.
그리고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어도 이곳저곳이 이유 없이 아플 때가 있다.
그리고 중요한 한 가지를 잃어가고 있다.
나는 근래에 웃을 일이 많이 없어지는 걸 느끼고 있다.
실제로 웃을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뇌가 말랑말랑하지 않고 딱딱해져 가는 느낌이다.
설상가상으로 화는 더 늘어가는 느낌이다.
장인어른과 아버지의 노년의 삶을 보면서 나는 늙어도 당신들처럼 살지는 않을 거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지만 나도 점점 더 그분들을 닮아가는 듯해 두렵다.
삶이 무료하고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당신들의 삶에도 다 이유가 있으리라.
퇴직이 가까워질수록 하루라도 더 빨리 퇴직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경제적인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퇴직은 답이 없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 아침 새벽 6시에 일어나 두 알의 삶은 달걀과 두 개의 토마토, 그리고 한잔의 물을 마시고 직장을 향해 달리고 있을 것을 안다.
우리는 누구나 퇴직하면 마음껏 세계를 여행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한 달 살기, 더 나아가 1년 살기를 꿈꾼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아는 선배가 제주 한 달 살기 하면서 수천만 원을 썼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아연 실색했다.
그러한 삶 역시 경제적인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선결요건이 있다.
나의 노년의 꿈은 거창하지 않다.
이곳 주말농장에서 작은 농사를 지으며, 신나는 음악을 듣고 , 가벼운 글을 쓰고, 가끔씩 등산 좋아하는 아내와 트레킹을 떠나는 것이다.
농번기인 겨울에는 가을에 수확한 맛있는 과일을 맛보며 종일 독서를 하면 좋겠다.
그때는 꼭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도 읽어 볼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인 여유가 되면 먼 해외여행도 떠나고 크루즈선도 타보고 싶다.
그러한 나의 노년에는 말벗이 되어 줄 아내라는 동반자가 꼭 필요할 것이다.
내 가슴속에서는 그날이 벌써 기다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