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회사에 입사한지 만 21년째이다.
30년 넘게 한 직장만 다니는 사람도 수두룩한 걸 보면 그리 대단한 세월이 아닌것 같기도 하다.
내 나이 마흔에 청천벽력 같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오랜 병원생활을 마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의 대부분은 인내의 시간이었고 가족을 위한 희생의 시간이었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시간이 겹겹이 쌓이고 흘러가는 세월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나는 어느 덧 환갑의 나이가 되었다.
내년 쯤에는 퇴직의 순간이 다가와야 할 것인데 고맙게도(?) 정년이 3년이나 늘어나는 바람에 아직도
즐겁지만은 않은 직장 생활을 3년 넘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내 또래의 은퇴를 앞둔 회사원들이 느끼는 감정은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결국 노후 생활의 안정적 보장이 어느 정도까지 가능하냐에 관심이 모아진다.
마음은 지금 당장 은퇴를 하고 나름의 잘 짜여진 행복한 노년의 행복을 구가하고 싶지만 문제는 역시 경제적인 여유였다. 쥐꼬리만한 퇴직연금으로 살아 갈 노년의 미래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8시간 짜리 비대면 교육을 이수하고 퇴근 하려는 차 앞으로 70대 사업주의 모습이 나타났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퇴근하는 동작을 이어 갔는데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자기도 퇴근을 안했는데 왜 가냐며 더 있다가 가란다.
자주 겪던 장면이라 두 말없이 차 시동을 끄고 내렸다.
좀전에 사장은 이사와 같이 나가서 저녁을 먹고 왔다.
나는 사무실에 앉아 씩씩 거리고 있는데 인터폰이 왔다.
사장실로 갔더니 아까 일을 다시 문제 삼으며 내 속을 한번 더 긁는다. 참 뒤끝이 많은 양반이다.
그러더니 냉장고를 열어 저녁으로 먹으라며 빵 봉지를 건넨다. 사무실에 와서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니 6월 초로 한달쯤 지난 빵들이다. 쓰레기통에 쳐 넣어 버렸다.
사무실에서 당직을 서던 차장이 물었다.
그 오랜세월을 어떻게 버텼나며 의아해 한다.
나는 그게 가족의 힘이고 아버지의 희생 아니냐며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제도 당직을 서고 늦게 퇴근했는데 오늘도 어제 그 시간이 되었다. 이미 어둑해진 익숙한 골목길을 한참이나 바라 보았다.
이제 모든게 버거워졌다.
사업주의 앞뒤 맞지 않는 지시와 질책.
말을 잘 들으려 하지 않는 젊은 직원들의 따돌림,
일, 가정이 양립할 수 없는 구조의 직장생활.
나는 이미 정신과를 다니는 두 명의 오래된 직원들 처럼은 절대 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며 슬슬 퇴사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