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머니 앞에서는 예스맨이 되고 싶어요.

by 석담

주말농장에 비가 내립니다.

내 마음에도 비가 오네요.

꿀꿀한 기분에 막걸리를 마십니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내 마음의 비도 같이 내립니다.

어제저녁 회사를 마치고 주말농장이 있는 청도로 오면서 근처의 본가에 들렀어요.

김이 설설 나고 타박하게 잘 삶아진 찐 감자를 한솥 내어 오신 어머니께서 감자를 캤다 하십니다.

감자를 먹고 싶은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버럭 화가 났어요.


작년 생각이 났습니다.

작년에도 어머니가 주중에 감자를 다 캐시는 바람에 화를 내고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나랑 같이 수확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올해도 달라진 건 없습니다.

팔순의 노모가 두 고랑이나 되는 많은 감자를 캐고 옮겼다는 생각에 마음이 저며 옵니다.

어머니는 내일 많은 비가 온다 해서 팔순의 고령에 혼자서 감자를 다 캐서 옮기고 비가 맞지 않도록 마루 밑에 군데군데 넣어 두셨지요.

아내는 제가 어머니한테 화를 냈다고 나무랐어요.

백번 욕먹어도 싸지만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입니다.

아침에 본 어머니의 모습은 몸살이 난 듯 피곤한 표정이었습니다.


제가 처음 주말농장을 시작하고 나서 어머니는 부산의 본가에서 불원천리 하고 찾아오셔서 제 농사일을 도와주셨지요.

40년 가까이 직장 생활하시던 어머니는 농사일이 재밌다며 그 먼 부산에서 한 달에 서너 번씩 청도의 농장을 찾으셨지요.


그런 어머니를 위해 청도로 본가를 이사해 드리고 지금은 청도에 정착하여 재미나게 사시지요.

본가에도 50평 가까운 텃밭이 있어서 농촌 출신인 어머니는 갖가지 야채와 작물을 심는 재미로 노년의 시간을 바쁘게 보내고 계시지요.


어머니의 일 욕심을 생각하면 내가 괜히 어머니와 함께 주말 농장을 했나 싶은 생각도 들어요.

이제는 연로하셔서 얼마 전에 한약도 한재 지으셨다 하셨어요. 저는 오로지 어머니의 건강이 걱정입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삼아 하시는 농사일은 괜찮지만 건강을 해칠 정도의 무리한 일은 안 하셨으면 합니다.


어머니는 귀가 많이 어두우세요. 아버지는 당신이 보청기 하신대서 해드렸는데도 사용 안 하시고 어머니는 보청기 하자고 말씀드려도 한사코 안 하신다 하세요.

어머니 당신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시라 해도 안 하십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 말은 못 알아들으시고 당신 말만 하십니다. 그래서 어머니와의 대화는 항상 힘들어요.


어머니께 화내지 않겠다고 여러 번 다짐했지만 이번에도 그 다짐을 지키지 못했어요.

그래서 오늘 또 자책했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다짐해 봅니다.

저는 어머니의 예스맨이 되기로 다짐해 봅니다.

어머니가 우리 가족과 함께 하는 그날까지 저는 어머니의 예스맨이 되겠습니다.


엄마, 사랑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