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문턱에 성큼 다가섰다.
주말 오후 서둘러 도착한 주말 농장에는 서리 맞아 박제된 꽃들이 농막을 지키고 있었다.
올해의 마지막 농사인 마늘과 양파 파종을 준비하는 농부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편안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300평 남짓의 밭을 돌아보았다.
배추, 무, 봄동, 상추, 쪽파가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찬 가을바람을 꿋꿋이 견뎌 내고 있다.
충청도에서는 무름병으로 배추 농사가 폭망이라는데 나는 평년작은 된 듯해 나름의 위안을 삼는다.
배추 농사에 시련을 겪고 계실 농부님들께 심심한 위로를 보내드린다.
보름 전에 퇴비와 유박비료를 뿌려 둔 빈밭을 관리기로 갈아 주었다.
동네 형님의 관리기를 공짜로 빌어 쓰는 건 내게 큰 행운이다.
그리고 마늘밭에 잡초가 생기지 않도록 제초제도 뿌리고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토양살충제도 뿌렸다.
그리고 밑거름용 비료를 뿌리고 내일 있을 파종 준비를 마쳤다.
아직 밭 여기저기에는 내 손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지만 오늘 작업은 그것으로 끝이다.
엿장수 마음대로다.
이제 나의 시간이다.
빈티지한 전축에 LP판을 걸어 음악을 듣는다.
Bee gees도 듣고, ABBA도 듣고, GNR의 메탈도 듣는다. 행복한 시간이다.
노래 듣다 지겨우면 책을 읽었다.
눈이 침침해지면 휴대폰으로 OTT 영화를 보았다.
어느새 밖은 어둠이 내리고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다. 노동의 밤은 언제나 꿀잠이다.
동향인 농막의 베란다 창으로 아침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면 늦잠은 저만치 달아난다.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작년에 씨마늘 하려고 처마에 매달아 놓은 마늘 한 접과 어제 영농조합에서 사 온 양파 모종을 들고 밭으로 갔다.
어머니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양파와 마늘을
심으며 연신 동네에서 들은 일주일간의 소식을 내게 전해 주신다.
옆집 아주머니는 배추를 빨리 심어 어제 김장을 했고, 동네 이장은 유럽 여행을 갔단다.
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한 번씩 "왜요"
"누가요"하며 장단을 맞춰 준다.
귀가 어두운 어머니는 내 이야기를 잘 알아듣지 못하신다. 그래도 나는 그냥 알아들으셨으리라 생각하고 두 번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우리 모자의 마늘심기 작업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마늘 심기가 끝나고 배추 묶어 주는 작업까지 마치고 나니 배꼽시계가 점심때를 알렸다.
그때 어머니는 마늘 밭을 떠나시며 내게 엄포 놓듯이 크게 말씀하셨다.
"내년부터는 밭에 농사 지으러 안 올란다."
데자뷔를 보는 느낌이다.
어머니는 작년에도 저렇게 말씀하셨지만 올해 봄 얼음이 녹기 무섭게 밭으로 달려오셨다. 나는 어머니의 다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청도에 농막을 짓고 주말농장을 하기 시작한 게 4년 전이다. 초보 농부의 시행착오와 게으름으로 수익도 없고 몸은 힘들어도 나는 아직 꿋꿋하게 나만의 주말 농장을 해 나가고 있다.
가까운 이들은 사 먹는 게 오히려 싸다고 하며 주말 농장을 힘들게 뭐 하려 하냐고 말한다.
다 옳은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이 생활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아버지의 고관절 수술 이후 찾아온 치매 초기 증상 때문에 아버지 뒷바라지로 어머니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경제력도 없는 아버지의 금전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어머니에 대한 극심한 의존증 때문에
어머니의 삶은 피폐해졌다.
나는 매주 본가를 찾을 때마다 그것을 보고 느끼고 있지만 다른 현실적인 방도가 없다.
다행히 아버지가 주간보호 센터에 가시는 낮시간 만이라도 어머니가 잠깐의 자유를 누리시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내가 어머니와 함께 밭에서
같이 땅을 일구며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고 어머니의 친구가 되어 줄 생각이다.
그것이 내가 주말 농장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이다.
어머니의 아들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도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