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김 부장 이야기"라는 OTT 드라마에 관련된 글들이 브런치에 심심찮게 올라왔다.
시리즈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중간에 시청을 중단하기 힘들어서 영화처럼 즐겨보지 않았었다.
하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낯설지 않아서 한가한 주말 저녁에 마음먹고 찾아보았다.
중소기업에서 21년째 근무 중인 나 또한 김 부장이다.
내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한 것은 2004년이었다. 약간의 경력을 인정받아 대리라는 직책을 달고 처음 회사에 들어왔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과장을 달고 차장으로 진급하고, 마침내 부장이 되었다.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언제 부장을 달았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10년은 한참 지난 듯하다.
나보다 너 댓살 어린 부장들 두 명이 몇 년 전에 이사로 진급했다. 그들은 모두 25년 이상 장기 근속한 생산부서 직원들이었다.
내가 여태 진급하지 못한 이유가 명백해졌다. 임원이 되기에는 근무 연한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나는 적어도 퇴직 전에는 임원이 될 수 없다는 절망적인 결과에 도달했다.
중소기업의 임원은 대기업 임원과는 거리가 멀다. 억대 연봉도 보장되지 않고 퇴직 전 잠시 예우를 위한 자리가 아닌가 싶다.
아내는 내가 언제나 임원이 될까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나는 오히려 지금이 훨씬 마음 편하다. 이사라는 직함을 달고 자기 일거리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는 사무실의 생산이사를 볼 때면 나는 마음이 좋지 않다.
그는 잘 나가던 생산부서의 기술자였다.
나이가 오십 대 중반에 접어들자 사장은 고임금을 받던 그를 사무실로 보직 이동을 시키고 생산이사라는 거창한 직책을 내렸다.
그렇지만 직장생활 내내 기계만 돌리던 그가 사무실에서 할 일은 없었다. 생산 현장을 배회하고 책상에 앉아서 유튜브로 소일하다 퇴근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월급도 현장에서 일할 때 보다 현저하게 줄어 버렸다.
한편, 또 다른 생산 이사는 영리하게도 기계 작동의 노하우를 부하직원에게 전수하지 않아 업무를 인수받을 후임이 없어서 아직도 생산부서에서 기계를 돌리며 부하직원들을 거느리고 자기 능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다.
어떤 임원이 더 행복할지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나는 여전히 부장이지만 적어도 내 쓰임새는 명확하다. 나는 관리업무만 10년 넘게 하고 있다.
금요일인 어제는 공장의 마당 아스콘 포장 공사 때문에 직원들이 임시 휴무를 했다.
그렇지만 나는 어제도, 토요일인 오늘도 정상 출근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과는 거리가 먼 나의 직장생활이지만 아직도 나는 아직 영 퇴물은 아닌 듯싶다.
쉬면서 가족들과 즐거운 주말을 보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내가 하루 수고하고 직원들이 편히 쉴 수 있다면 그것이 내게는 더 값진 시간이다.
오늘 퇴근 후에 "김 부장 이야기"를 5회 차까지 단숨에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시리즈의 김 부장처럼 화려하게 부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회사의 정년 규정이 바뀌지 않았다면 내년부터 나는 '삼식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년이 63세까지로 연장되는 바람에 나는 아직 대학을 다니는 둘째 딸을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은행을 다니던 고등학교 때 절친도 올해부터 백수가 되었고 대기업 상무로 재직하던 대학 동기도 작년에 회사를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때는 그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 생각이 사라졌다.
"김 부장 이야기"의 폐차 낙인이 찍힌 영업용 승용차를 보고 나서였다.
나는 27만 킬로미터를 넘긴 내 차의 연식만큼이나 오래도록 쓸모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