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가을에 청도에 있는 주말 농장의 양지바른 땅에 가족자연장지 신청을 하고
작년 봄에 잔디를 심어 두었다.
잔디만 있는 공간이 허전해 보여 몇 주 전부터 나무를 심을 궁리를 했었다.
소나무와 참나무를 두고 고심을 하다가 마침내 사철 푸른 소나무로 결론을 냈다.
그냥 소나무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적송을 심어볼까 생각하다가 문득 울진의 금강송이 떠올랐다.
여러 해 전 영덕의 칠보산 자연휴양림 가는 길에 보았던 금강송 군락지의 웅장함과 그 미려한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
금강송의 다른 이름은 춘양목이다.
봉화군의 춘양 지역에서 벌채되어 가공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목재로써의 춘양목은 최고급 문화재나 주거용으로 주로 쓰이고 안타깝게 불에 탔던 숭례문의 복원에 사용된 나무라니 실로 놀랍기만 했다.
금강송으로 결정하고 나니 급한 성격 탓에 소나무 심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봉화에 있는 춘양목 농원에 전화해서 25년생 금강송 두 그루를 주문하고 심을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오늘 설레는 마음으로 1톤 화물차에 실려 도착한 금강송을 만났다.
오전 내내 두 개의 나무 심을 구덩이를 파느라 파김치 같이 축 늘어져 있었지만 수려한 자태의 금강송을 보고 나니 생기가 돌았다.
조경수로도 손색이 없는 금강송이었다.
춘양목 농장주인과 둘이서 힘을 모아 나무를 차에서 내리니 그는 능숙한 솜씨로 나무를 구덩이에 앉히고 외형을 만들었다.
두 시간 넘는 거리를 달려와 금강송을 심어 준 농장주인이 너무 고마워 지인에게 주려고 담아둔 배추자루를 덥석 집어 화물차에 실어 주었다.
그는 나무를 키우면서 문제가 있으면 언제나 연락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배추 잘 먹겠다는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그가 떠나고 나서 물호스를 꺼내 나무에 정성스럽게 물을 주었다.
내 마음의 기를 담아 듬뿍 급수를 했다.
그리고 나무의 굵은 가지를 어린아이 다루듯이 사랑스럽고 조심스러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프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라"
그리고 또 나는 기도했다.
"저 금강송이 숲을 이룰 때까지 부모님과 함께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