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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검진의 딜레마

by 석담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우편함에서 우편물을 끄집어 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상승하는 동안 부리나케 봉투를 뜯어 훑어보았다. 엘리베이터가 21층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입술은 바싹 마르기 시작했다.


해마다 돌아오는 건강검진 시기가 되면 나는 항상 기분이 좋지 않고 긴장을 늦출 수 없다.

50대 중반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검진 결과를 받아 들고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결과에 안도하곤 했었다.


그렇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상황은 급반전 되었다. 건강 검진 결과서에 이상징후가 포착된 것이다.

며칠간 술에 전 어느 해의 건강검진에는 감마지피티가 정상 수치를 벗어났고, 어떤 해는 혈청크레아티닌 수치가 정상수치를 벗어나 있었다.

그러면 부리나케 20년 가까이 나의 건강상태를 지켜봐 온 신경외과 주치의에게 톡을 보내 원인을 물어 보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올해는 심각했다.

혈색소가 기준치 보다 높게 나왔고 간장질환의 지표인 AST와 감마지피티도 기준치를 약간 초과했다.

심장 박동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서둘러 주치의에게 톡을 보내고 멍한 표정으로 외투도 벗지 앉은 채 거실 탁자에 앉아 건강검진 전에 내가 했던 일들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 검진 전 주에는 술도 마시지 않았고, 심한 운동을 했었는지 잘 모르겠네."


아내가 돌아온 듯 도어록의 버튼소리가 유달리 크게 다가왔다.

나는 서둘러 검진 결과지를 화장대 서랍의 내 사물함에 구겨 넣었다. 그리고 아내에게 아무 일도 없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오늘은 일찍 왔네"


내가 아내에게 검진 결과를 보여 주지 않았던 이유는 아내의 잔소리가 싫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는 나의 검진 결과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큰 난리가 난 듯 걱정거리를 만들까 두렵기도 했다. 옛말에 "병은 알리고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나는 간단히 무시했다.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 뉴스를 보는 데 주치의 선생님의 답톡이 왔다.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런 식이면 장수(長壽)는 물 건너갔고 단명(短命)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나자 갑자기 또 다른 열의가 솟아올랐다.

"그래, 죽지 않으려면 운동하자. 그것만이 살길이다"

나는 밤중에 잠옷 바람으로 신천변으로 달려 나갈 기세였다.

그리고 아내가 잠든 후에 내방으로 돌아와 조용히 방문을 닫고 팔 굽혀 펴기를 시작했다.

다섯 개쯤 하고 나니 얼굴에 피가 쏠린 느낌이 들면서 몸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겨우 10개를 하고 나서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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