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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old) & 영(young)

by 석담

시계(視界) 제로.

더 이상 물러날 곳도 도망칠 곳도 없다.

내 등 뒤에는 견고한 벽으로 막혀있다.

사무실 출입문에서 멀리 떨어진 자리에 있다는 것은 집으로 돌아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보된 3년이 지나면 마지막 배수진이었던 이 자리마저 비워주고

쓸쓸히 퇴장해야만 한다.

그것으로 나의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걸로 내 인생은 페이드 아웃(Fade Out)인가?


나이가 들면 눈이 제일 먼저 노화의 신호를 보낸다. 앞이 잘 보이질 않는 것이다.

앞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무서울 게 없다.

목소리가 커지고 걸핏하면 화를 낸다.

분노 조절장애라는 소리까지 예사로 듣기 마련이다.

그뿐인가?

밖에서는 낯선 '아버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회사에서는 경력자나 상사로 대우받기보다는 은퇴를 앞둔 퇴물 취급을 당한다.


나는 그들이 낯설다.

40, 50대 직원들의 사고방식이 나의 그것과도 다르고 '라테'의 생각과 너무 달라서 언감생심 "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들고 "도와줘"라는 말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묵묵히 혼자서 해낸다.

무거운 화분도 혼자서 옮기고, 화장실 청소도 혼자서 한다.


그들은 영(young)하다. 연차 휴가도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쓰고 힘든 일을 시키면 면전에서 싫은 티를 팍팍 낸다.

그들의 번쩍번쩍한 최고급 승용차 옆에 주차된 오래된 낡은 내 차는 초라하다.

나는 지금껏 무얼 하고 살았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들에게 절약은 이미 미덕이 아니다.


집에서는 어떤가?

아내는 이제 각방 쓰는 옆집 사람으로 전락하고 나는 마누라 표정 살피며 설거지를 해야 한다.

젊어서 내가 아내에게 쏟아 내던 잔소리가 역전되어 이제는 내가 일방적으로 들어주는 존재가 되었다.

딸들은 볼에 뽀뽀도 할 수 없을 만큼 커 버렸고 용돈이 필요할 때만 내게 연락을 한다.

문득 사무실 동료의 한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늙으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진리였다.


문득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 떠올랐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원문 :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지금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는 위기감에 작년 연말 독서모임에 가입하고 올드팝송 감상 동호회에도 들었다.

시간 내서 독서하고 토론하고 그리고 모임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 웃고 대화하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위안을 얻어 갔다.

그들의 연령대는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지만 나를 올드(old)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염색을 해야 하고 얼굴 곳곳에 주름이 가득해졌다.

자다가 깨기도 하고 몸 여기저기서 이상 신호를 보낸다.

늙어 간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세월을 거슬러 살 수는 없으니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예전처럼 술을 마시면 다음 날 출근하는데 애를 먹는다. 이제야 술이 독이라는 오래된 의사의 이야기에 공감이 된다.

기준치를 벗어난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고는 하기 싫어하던 운동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드워즈의 시가 절절히 가슴에 와닿는 아침이다.


초원의 빛


윌리엄 워드워즈


한때 찬란하게 빛나는 빛이었지만

이제는 내 눈앞에서 사라져 가고,

다시는 찾을 길 없을지라도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우린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서 용기를 얻으리라.

존재의 영원함을

처음으로 공감하며,

인간의 고뇌를

사색으로 누그려 뜨려,

죽음을 간파하는 그 믿음 속에서,

세월 속에 현명한 마음으로 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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