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by 석담

며칠 전부터 아내와 냉전에 들어갔다.

기선 제압이 싸움의 승패를 가른다며 나는 승리를 호언장담 했었다.


시작은 내가 했지만 냉각기가 길어지면서 조바심이 났다.

이제 그만해도 좋을 것 같은데 아내는 이 싸움을 그칠 생각이 없나 보다.


그래도 명색이 갱상도 싸나이가 꼬리를 내릴 수는 없지.

그것은 큰 오산이고 나만의 착각이었다.


일주일 전에 시작된 부부대전(夫婦大戰)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아내가 없는 동안 주방에서 먹을거리 들고 와 허겁지겁 끼니를 때웠다.

그러다 아내의 인기척이 느껴지면 책상에 앉아 짐짓 아무 일도 없는 듯 시치미를 시전 했다.


아내는 내 빨랫감을 세탁기 후미진 곳에 마치 쿠데타를 꿈꾸던 대역 죄인처럼 유배했다.

그렇게 나의 약점을 공략했다. 나는 더 이상의 속옷을 찾지 못하고 이틀째 같은 팬티를 입고 있다.

팬티 속에서 스멀스멀 벌레가 기어 나올 것만 같다.


등산 가방을 둘러매고 산을 오른다.

아침에 먹은 빵 한 조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등짝에 달라붙은 뱃가죽은 전의를 희석시킨다.

식당에서 수제비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비우고 귀양살이 떠나는 죄인의 심정으로 산을 오른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주방에서 밥을 먹고 있다.

나의 자존심은 같이 밥 먹자는 말 한마디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

그리고 어두운 밤 주방에서 쥐새끼처럼 아내가 남긴 배추쌈을 먹으며, 이건 패배한 싸움이라고, 부질없는 싸움이라고 그렇게 항복의 백기를 들었다.


그날 밤 나의 절친 반려견 해피는 아내의 방으로 제 발로 찾아가 돌아오지 않았다.

해피마저 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미 알고 있었던 걸까?


잠결에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었다.

내일은 속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는 안도감에 더욱 깊은 잠 속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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