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쯤, 정확히 마흔여덟 해 전에 나는 부산에서 국민학교를 다녔었다.
혼자서 차를 타는 방법을 터득한 4학년 때부터는 방학 때마다 버스와 기차를 넘나들며 고향을 찾았었다.
내 고향은 경북 의성의 안계라는 곳인데 집 앞 신작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면 보이는 들을 우리는 '안계평야'라고 불렀다. 동갑내기 사촌은 나보다 보름쯤 먼저 태어났는데 한 번도 형이라 부르지 않았다.
이 글에서 만이라도 형이라고 불러 볼까 한다.
5학년 때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해도 여름방학을 맞아 부모님께 떼를 써서 방학을 시작하자마자 고향으로 떠났다.
반갑게 만난 사촌 형은 여느 해와 달리 붓글씨에 몰두해 있었고 초보자인 내가 보기에도 필체가 예사롭지 않았다. 어느 실력 있는 붓글씨 선생님에게 사사를 받고 있다고 했다.
방학 동안 매일 사촌 형이 붓글씨 쓰는 모습을 보고 나는 눈으로 많은 붓글씨 공부를 했다.
그렇게 방학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붓과 벼루, 그리고 화선지를 구매했었다.
그날부터 붓글씨를 혼자서 쓰기 시작했다. 붓글씨 독학이라고 해야 맞겠다.
머리로는 사촌의 붓글씨를 상상하며 혼자서 열심히 쓰고, 또 쓰고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자세히 뜯어보아도 사촌의 그것만큼 잘 쓰지는 못한 것 같았다.
국민학교 6학년 어느 날 국민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붓글씨 경진대회가 열렸다.
과제로 낸 내 붓글씨를 눈여겨보신 담임 선생님이 한사코 나에게 나가보라고 하셔서 반강제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떨리는 손으로 엉성하게 써 내려간 붓글씨가 내가 보기에도 부족해 보였지만 그냥 제출하고
행사 장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얼마간의 날들이 지나서였다.
선생님은 조회시간에 내가 붓글씨 경진대회에 최우수상이라며 시상식에 같이 가자고 하셨다.
나는 설마 하며 좀 의아스러웠지만 선생님 말씀이라 굳게 믿고 그런 줄 알았었다.
그리고 내가 최우상을 받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마침내 붓글씨 대회 시상식 날이 밝았다.
어머니와 나는 시상식에 참석하여 수상자 호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독학으로 배운 붓글씨로 최우수상을 받는다는 사실에 우쭐했다.
그렇지만 나의 기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우수상, 우수상에도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내 가슴은 한없이 쪼그라들고 내 얼굴은 침울하게 바뀌어 갔다.
마침내 장려상 수상자에 내 이름이 호명되었지만 나는 기쁘지 않고 화가 났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눈물이 그렁한 얼굴로 선생님과 어머니를 보았다.
당황한 선생님의 모습, 안쓰러운 표정을 하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어떻게 상장을 받아서 내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장을 받고 내려오니 어머니가 연신 "장려상도 잘했다며"나를 위로하셨다.
시상식 시간은 왜 그리 지루하게 오래 계속되는지, 나는 부끄러움에 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다.
다음날 애들 앞에서 창피를 당할 거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자포자기 상태였다.
그리고 나의 슬픔은 이미 분노로 변해 가고 있었다.
마침내 시상식은 끝났고 어머니는 선생님께 같이 식사라도 하자시며 웃으셨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내 얼굴은 벌써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 옆에서 안절부절못하시는 선생님 얼굴을 한번 흘깃 보았다.
그리고 나는 먼저 가겠다며 팔꿈치로 눈물을 닦아내고 도망치 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사뭇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날 내 어린 시절의 슬픔과 분노의 최대치를 감당해야 했다.
* 상단의 이미지는 ChatGPT로 만들어진 가상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