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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담 Jan 16. 2022

나의 좋은 벗들이여,  잘 지내시죠?

처음 마음을 빼앗긴 이성은 국민학교 1학년 때 짝꿍이었다.

친구랑 둘이서 그녀의 집 앞을 어슬렁거렸다.

요즘 같으면 스토킹 감이다.


친한 사내 녀석들, 소위 절친은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바뀌었다.

절친의 증거는 항상 동일했다. 서로의 집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나 이렇게 사니까 잘 지내보자'는 정도의  속살 보여주기 같은 친근함의 표시가 아니었나 싶다.

같이 공부하고, 같이 게임하고, 그리고 아직도 기억나는 놀이가 있다.

퀴즈 맞추기 게임이 그것이었다. 어느 집에나 위인전집은 있었다. 그 위인들의 업적이나 연보를 읽고 그 사람이 누군지 맞히는 게임이었다. 공부도 하고 재미도 얻는 일석이조의  게임이었다.


6학년이 되어서 반장을 맡았다. 그제야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그 해에 처음 친구와 치고받고 싸웠다. 성격이 소심하고 겁이 많아 싸움하고는 담쌓은 내가 진정한 사나이가 된 기분이었다.


6학년 때 1년 정도 과외를 했다.

남자 세 명, 여자 세명이 모여서 과외를 했었다. 그중 여자 동기 한 명은 성인이 될 무렵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접했다. 내가 알던 친구가 세상에 없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머지 친구 다섯이랑 과외 선생님과는 지금도 단톡으로 연락하며 주기적인 모임도 이어가고 있다.

모두들 내게 소중한 이들이다.


내 삶에서 이상하게도 중학교 친구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중학교 때 중요한 종교적 선택을 했었다.

불교 학생회에 들어간 시기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불교 학생회 활동을 하며 종교적인 마음가짐을 흔들림 없이 다졌다.

남녀 친구 통틀어  10명의 친구들과 지금도 OB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동기들 중 몇 명과는 학창 시절 내내 진한 우정을 나누며  지내다가 지금도 가끔씩 모여 회포를 푼다.

서로의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 정도로 친한 사이라 세월이 흘러도 그들과의 우정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학내 영자신문사에 들어가는 바람에 학과 진구들과의 교우관계에 소홀했었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친구는 없다.

일 년에 한두 번 연락하고 경조사나 챙기는 정도의 그런 친구들만 있다.

대신에 영자신문사에서 같이 잔뼈가 굵은 보석 같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에게는 항상 고맙다.


그리고 대학에서 만난 좀 낯설고 특이한 조합의 친구도 있다.

학교 앞에서 같이 하숙하면서 만난 형과 후배이다.

형은 한의대 졸업 후 한의원을 하고 있으며, 후배는 경영학과 졸업생으로 울산에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씩 모여 같이 산행을 하면서 우의를 다지고 있다.

해외여행을 목표로 회비도 매달 적립 중이다.


페북에 팔로워가 몇 명이고, 인스타그램에는 몇 명인지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친구들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내가 늙어서 기억도 희미해져 세상에서 잊혀 때쯤 같이 손잡아 일으켜  줄 친구가 몇이나 될까 고민해 볼 나이가 되었다.

 나의 든든한 벗으로 남아 있어 준 그들에게 진정 고맙다고 그리고 지금처럼 늘 곁에 머물러 달라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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