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만난 그녀

by 석담

김대리는 첫 해외 출장에 밤잠도 설쳤습니다.

자는 둥 마는 둥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여권이 가방에 잘 들어 있는지 몇 번이나 꺼내어 다시 확인을 했습니다. 같이 여행을 가는 김 과장의 조언 때문이었습니다.


"해외 출장 가면 여권이 제일 중요해. 그거 잃어버리면 집에도 못 오고 국제 미아된다"


김 과장은 무역부 상사로 해외 출장도 여러 번 다닌 베테랑이었습니다.

김대리는 입사 후 김 과장의 출장에 처음으로 동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홍콩에서 있을 국제 산업 박람회에 같이 다녀오라는 사장님의 지시로 처음 해외 출장을 떠나는 길입니다.


비행기가 김포공항을 이륙하자 김대리는 '이제야 출장 가는구나' 하고 실감이 났습니다.

기내식이 나왔습니다. 김대리는 소꿉놀이 밥상 같다는 생각을 하며 기내식을 남김없이 비웠습니다. 그리고 술은 그냥 시키면 공짜라는 이야기에 맥주를 몇 개나 시켜서 마셨습니다. 얼큰하게 취하고 기분도 좋아졌습니다.


홍콩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최신 시설의 홍콩 공항의 휘황찬란함에 김대리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습니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공항을 빠져나오는데 통로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김대리는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우유 빛깔 피부에 긴 생머리, 그리고 쌍꺼풀 없는 눈의 여자가 김대리를 불러 세웠습니다.


영어로 무어라고 이야기하는 데 김대리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역부에 갓 입사한 김대리는 영어를 12년이나 배웠지만 아직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에는 잼병이었습니다. 김대리는 몇 번이나 'I beg your pardon?'을 남발한 후에야 그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그녀는 홍콩의 대학생으로 공항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녀는 김대리에게 명함을 건넸습니다.

거기에는 "Winnie Sun(孫委利)"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김대리는 그녀가 햇살 같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이 손(孫)씨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5분 남짓 간단한 설문 조사를 마치고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뒤로하고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홍콩에서의 일주일의 출장기간 동안 김대리에게는 그녀의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은 빠르게 흘러 김대리는 귀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귀국 후에도 김대리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떠올라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김대리는 그녀가 홍콩 배우 오천년을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대리는 문득 그녀가 준 명함이 생각났습니다.

가방 속에 고이 간직한 그녀의 멍함을 꺼내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손위리(Winnie Sun)라는 그녀의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김대리는 퇴근하자마자 그녀에게 영어로 편지를 썼습니다. 밤을 새워 그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차마 사랑한다고는 쓰지 못했습니다.


출근하자마자 우체국에 들러 EMS로 편지를 부쳤습니다.

일주일 후에 그녀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그녀의 사진과 편지가 함께 왔습니다. 그녀는 홍콩에 살고 부모님은 미국에 이민 갔다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렇게 김대리와 그녀의 편지는 횟수를 거듭하여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6개월쯤 지나서 그녀로부터 더 이상 편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김대리는 속이 탔습니다. 그녀가 왜 연락이 없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김대리는 또 편지를 썼습니다. 김대리는 기어이 사랑한다고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김대리는 편지를 쓰고 나서 괜히 사랑한다는 말을 썼다고 후회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소용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또 한 달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다시 기다리던 편지가 왔습니다.

그 편지에는 그동안 그녀가 보낸 편지와 사진을 다시 보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함이라는 내용도 적혀 있었습니다.

바보 같은 김대리는 그녀가 시킨 대로 그녀가 지금까지 보낸 편지와 사진을 다 동봉해서 그녀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한 달 후 모르는 이름의 해외 우편물이 왔습니다.

그는 그녀의 남자 친구라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는 그녀가 김대리와 편지 주고받는 것을 눈치채고 그걸 확인하려고 김대리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녀와 결혼할 거라고 그녀를 잊으라고 김대리에게 전했습니다


김대리는 넋이 나갔습니다.

김대리는 홍콩행 비행기를 예약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홍콩에 가서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대리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김대리는 그녀를 짝사랑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김대리는 쌍꺼풀 없는 여자를 만나면 홍콩의 그녀를 생각합니다. 김대리는 국제결혼까지 생각했던 자신이 떠올라 가끔 씁쓸한 미소를 짓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행복을 빌어 주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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