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친구들과 모여 부모님이 없는 친구 집 골방에 모여 시작한 "도리 짓고 땡"과 "섰다"가 내가 처음 접한 '노름' 소위 '도박'의 시작이었다.
'광땡'이나 '장땡'의 헛된 욕망을 마음속에 숨긴 채 화투에 빠져본 기억들이 남자들에겐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이제는 국민들의 심심풀이 놀이가 된 '고스톱'도 엄밀히 따지면 노름이라는 게 나의 일관된 생각이었다.
딸들이 어렸을 때 외할머니댁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고스톱을 치는 걸 보면서 내심 걱정을 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본가에서 화투 치는 걸 볼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장모님이나 아내가 고스톱의 실력자(?)라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화투에 서투르다. 하는 방법은 알고 있지만 명절날이나 특별한 날 펼쳐지는 고스톱판에서는 슬슬 자리를 피했다.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 모여 즐기는 십 원짜리 고스톱까지 노름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우리 사회는 관대하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 앞 리어카에서 시도하던 설탕 녹여 만든 잉어 뽑기 놀이나 문방구에서 도전했던 축구공 뽑기도 어린애들 코 묻은 돈을 뺏어가던 노름의 시작이었다.
대학시절에는 더 진화해서 서양 카드 트럼프가 등장했다.
화려한 손놀림의 카드 섞기에 이은 포카 놀이는 가난한 대학생의 주머니를 탐했다.
몇 년 전부터 타짜라는 영화가 주목을 받았다. 화투의 고수(?)가 나쁜 상대를 뛰어난 기술로 제압한다는 통쾌한 스토리로 재밌게 보았다.
같은 노름꾼들끼리 싸우고 승리한다는 내용인데 우리는 정의가 승리한 냥 감정이입이 되어 즐거워했었다.
나도 어느새 주인공 노름꾼과 한편이 되어 그를 응원하고 있었다.
로또가 생기고 한때는 매주 로또를 매주 산 적이 있다.
몇 천 원부터 몇만 원까지 당첨된 적이 있었다.
지금은 로또 사기를 그만두었다.
로또를 샀던 사람들의 비참한 후일담 때문에 로또 사는 것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내가 노력하지 않고 얻은 돈은 의미 없는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로또 사기를 멈추었다.
대학교 1학년 때였다.
하숙집에 처음 들어가서 짐 정리를 마치고 음악을 들으려고 카세트 플레이어를 하나 사려고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의 전자 상가에 갔다.
거금 20만 원을 주머니 속에 깊숙이 넣고 청계천 상가 계단을 올랐다. 계단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있는 게 신기해서 슬쩍 들여다보았다.
육각형의 쇠로 된 공기가 여럿 놓여 있었고 그중에서 '솔'이라고 쓰인 종이가 들어 있는 쇠공기를 찾으면
판돈을 다 주는 노름을 하고 있었다.
내 눈에는 찾는 쇠공기가 보이는 데 사람들은 자꾸 엉뚱한 쇠공기를 집었다. 몇 번을 봐도 같은 상황이 재연되었다.
나는 주머니의 돈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나의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이미 판돈을 걸고 노름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기롭게 쇠공기를 골랐다. 공기 뚜껑을 여는 순간 내 머리는 하얗게 변했다. 내가 선택한 공기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솔'이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가져온 돈이 반이나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돌아서려는데 옆에 사람 좋게 생긴 아저씨가 '본전 찾아야죠'하면서 꼬신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남은 돈까지 다 쏟아 넣고 다시 도전했지만 또 꽝이었다.
결국 그날 사고자 했던 카세트 플레이어는 못 사고 그냥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생각이 자꾸 났다.
그리고 돌아오는 내내 나는 참 어리석은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나의 마지막 노름이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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