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타쿤테"
소녀는 그를 그렇게 불렀다.
티브이 드라마에 나오는 흑인 노예를 닮은 그의 외모를 빗대 그를 킨타쿤테라고 불렀다.
그는 그 이름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소녀가 싫어할 까 두려워 '쿤타킨테'라고 고쳐 말하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아프리카 흑인 노예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뿌리'가 장안의 화제였다.
그의 외모가 쿤타킨테를 닮을 정도로 바뀐 건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 였다. 그가 방학 동안 시골에 있는 사촌집에서 지내다 장난 삼아 이발기를 가지고 시작한 머리 깎는 놀이에 곧 중학생이 될 거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 머리를 빡빡 미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머리카락이 자라기 전까지만 해도 빡빡 깎은 머리가 만화영화 검정고무신에 나오는 중학생 형 머리를 닮아 동글동글 그런대로 봐 줄만 했었다.
머리가 자라면서 돼지 터럭 같은 머리칼은 삐쭉삐쭉 자유분방하게 자라기 시작했고 두터운 입술, 그리고 약간 돌출된 구강 구조와 까무잡잡한 피부로 인해 쿤타킨테와 백 퍼센트의 싱크로율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는 소녀가 '쿤타킨테' 라 부르며 관심을 가져주니 이유야 어쨌든 그에게는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그는 소녀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상위권 성적으로 반에서 급장을 맡고 있는 소녀에게 그도 공부 잘하는 쿤타킨테라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밤잠도 설쳐가며 열심히 공부해 상위권에 진입하는 기적도 이루었다.
그는 이제 그녀 앞에 당당한 남자 쿤타킨테로 섰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기를 좀 바라봐 줬으면 하는 심정으로 소녀 주변을 맴돌았다. 딱 거기까지였다.
빡빡머리 쿤타킨테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소녀는 6학년이 끝날 무렵 전학 갈 거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되었다.
겨울방학을 한 달쯤 앞둔 어느 날 소녀는 교탁 앞에서 선생님의 전학 소식과 함께 작별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소녀의 전학 소식을 듣고 싶지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았다.
하교 길에 소녀의 집 앞을 서성였다.
그는 소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 해 질 때까지 소녀의 모습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근처 주택의 담장에 붉은 장미가 눈에 들어왔다.
우악스러운 손길로 담장의 장미 한 송이를 꺾었다.
가시가 있었는지 따가운 통증이 느껴지고 손가락에 핏방울이 맺혔다. 그래도 아프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에게 보낼 장미라 생각하니 아픔도 즐거움이었다.
도로에는 가로등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거리를 비추고 인적 없는 그녀의 집 앞에는 고요만이 가득했다.
그는 소녀의 집 앞 철문 우편함에 꺾은 장미 한 송이를 다소곳하게 꽂아 놓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들리지도 않을 작은 목소리로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잘 가 친구야. 보고 싶을 거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 쓸쓸했다.
그는 눈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지만 꾹 참고 울지 않았다.
그는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막상 부르려고 하니 생각나는 노래가 없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아는 가사를 읊조렸다.
"서러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그는 쿤타킨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며 이미 짙은 어둠이 내린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