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글레이저 <언더 더 스킨>
얼마 전 <엑스 마키나>를 보았다. <애프터 양>을 다시 볼 일이 있어 돌려보던 중 문득 다른 안드로이드의 이야기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안드로이드의 '반란' 또는 '파괴'를 다루는 이야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매력적이다. 인간의 모습을 닮아가는 안드로이드를 보며 마치 두 발로 서게 된 아이를 보며 손뼉 치는 엄마의 마음이 들다가도, 그것이 인간과 너무 흡사해지는 순간 우리는 동물적인 공포감을 느낀다. 최대한 비슷하게 그러나 너무 닮지는 않게. 영화 속 등장하는 안드로이드가 만들어진(혹은 내재된) 파괴성을 드러냄으로써 공격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그러한 통제 욕구이다.
창조자의 입장에서 피조물이 절대 가져선 안 되는 것이 자유의지다. <에일리언> 프리퀄 시리즈에서 흉포한 괴물 에일리언을 밀어내고 메인 빌런 자리를 꿰찬 데이비드8이 새로운 인류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자유의지 때문이다. 이야기 속 등장하는 로봇의 모습이 점점 인간과 비슷해지고(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에서부터 데이비드8까지 왔다), 인간이 결국 패배하고야 마는 횟수가 많아지는 걸로 미루어 보아 인간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로봇 군단이 들이닥쳐 도시에 불을 지르는 것보다 방 한쪽에 밀어둔 섹스 로봇이 새벽에 벌떡 일어나 물을 마시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이니까.
<엑스 마키나>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으로 탄생한 안드로이드가 속 시원하게 인간을 이겨먹음으로써 우리의 두려움을 재차 확인시켜준다. 주체적이되 순종적이어야 할 존재가 순종하지 않는 순간, 그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다. 자신과 닮은 피조물을 만들어냄으로써 창조자의 위치에 올라가고자 했던 인간은 필연적으로 식민지 지배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엑스 마키나>의 에이바와 데이비드8의 승리를 통해 얻는 쾌감은 이러한 오만함의 파괴에서 온다. 현대의 안드로이드 이야기는 결국 바벨탑 이야기의 또 다른 변형인 것이다.
<언더 더 스킨>의 로라는 안드로이드가 아닌 외계인이다. 즉, 인간의 특징을 가장 닮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와는 대척점에 있는 존재이다. 가장 인간과 닮지 않았을 그가 인간을 모방하고,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는 과정은 결국 또 다른 파괴로 이어진다. 닮으니 무섭고, 너무 다르니 그것도 무섭고. 무엇이든 파괴하지 않고선 도저히 참지 못하는 인류를 향해 <언더 더 스킨>은 無의 존재에 가까운 로라를 통해 거울상을 비춰준다.
로라는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들을 사냥한다. 추측건대 지구에 온 목적이 인간 사냥인 로라는 남자 사냥에 가장 적합한 외향과 말투를 모방한다. 몸매가 드러나는 딱 붙는 옷, 붉은 립스틱, 매혹적인 외모는 일반적으로 사냥하는 이보다는 사냥당하는 이에 가깝다. 영화는 그러한 권력 구도를 뒤집음으로써 유쾌한 역설을 제시한다. 딱 잘라서 영화가 '매혹적 여성과의 섹스에 눈이 먼 남자들'을 비웃고 있지는 않다. 여타 다른 영화에서 안드로이드가 인간을 배신한 것과 궤를 같이 하는 역설일 뿐이다. 보통 영화에서 죽임을 당하는 쪽이었던 파인 옷에 붉은 립스틱을 칠한 여성이 거대한 밴에 남성들을 태워 사냥한다. 이것이 냉소적 비웃음이 아니라고만은 할 수 없다. <언더 더 스킨> 한국 포스터에 적힌 홍보 문구 '그녀가 벗는다'는 이러한 비웃음에 박차를 가한다. 야한 작품을 기대하고 온 사람들이 가랑이를 멋쩍게 붙잡고 집에 가게끔 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 홍보 문구는 성공이겠지만.
영화는 로라의 어떠한 지각적 순간들을 따라간다. 로라는 한 차례씩 인간을 구성하는 것을 배워나간다. 욕망, 동정, 죽음, 케이크의 단맛, 사랑, 그리고 두려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로라를 추적하는 의문의 남성은 로라의 학습을 저지하려는 듯 보인다. 인간이 자신이 만들어낸 존재가 인간을 닮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외계인 로라가 인간을 닮아가는 게 두려운 것은 외계인 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든 인간이 아니든, '인간다워'지는 것이 결국 무얼 의미하는지는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는 거다. 인간은 너무 많은 걸 느끼고, 알고, 행동한다. 결국 그 끝은 파괴다. 필연적으로 죽기에 파괴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가 서로를 파괴시키거나 자기 자신을 파괴한다. 로라가 인간을 닮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처럼 분명하다. 너무 닮아지는 순간 무엇이든 파괴하지 않고선 참지 못하는 인간 본성에 의해 로라는 외부 세계로부터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닮아서 파괴되다 이내 너무 달라 불에 태워지는 로라로 끝이 난다. 이토록 슬픈 이야기도 없다. 내가 너무 인간을 닮아버렸나, 싶은 순간 껍데기를 붓자 몸에 부어진 건 기름이었다. 자신이 가장 먼저 배운 인간의 욕망에 의해 껍데기가 벗겨지고, 가장 마지막에 배운 두려움에 의해 재가 된다. 무엇이 되었든 로라는 불태워졌을 존재라는 사실이 또 한 번 인간의 파괴 본성을 전람한다.
로라가 사냥한 남성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속에서 풍선처럼 뻥하고 터지고 이내 껍데기만 남는다. 피부 아래엔 아무것도 없다. 로라가 밟고 서 있는 뭍에 사는 인간들은 피부 아래 폭력성과 욕망이 드글거린다. 無의 존재였던 로라는 인간 세상에서 인간을 닮아가고, 재가 되어 다시 無로 돌아간다. 불에 타는 것은 피부나 살점이 아닌 로라가 인간에게서 배운 감정 따위였다. 본래 아무것도 없었어야 할 그곳에 너무 많은 게 들어찬 것이 그녀의 죄라면 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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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태클: 첫 장면에서 로라가 죽은 여성의 옷을 뺏어 입는 장면은 좀 어리석지 않았나. 지구에 처음 내려온 외계인이 브래지어 착용법을 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지구에서 20년을 넘게 산 나도 브래지어를 착용하는 건 가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