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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수부 Dec 22. 2022

내게 젊고 건강한 몸을 기대하지 마세요

미셸 렌트 허슈 『젊고 아픈 여자들』


젊은 여성들은 상대방에게 진지한 상대로 인식되지 않는 일에 익숙하다. 식당에서든, 병원에서든,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든 상관없이 어느 곳에서든지 말이다. 만약 병원에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매우 무력해진다. 나의 몸을 진찰하고, 때로는 환부를 보여주어야 할 이가 나의 고통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 책은 그러한 무력감에 대한 이야기다. '젊고 건강한 여성'이란 사회에서 만들어낸 이미지는 건강하지 않은 이들을 비가시화한다. 작가가 인터뷰한 다양한 여성들은 자신이 비가시화된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다. 길거리에서 행인으로부터 들은 모욕적인 말 정도는 양반이다. 유방에 통증을 느껴 찾은 병원에서 의사가 그의 통증을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바람에 결국 유방암 말기까지 가고 만 여성의 사례는 끔찍하다. 

젊은 나이에 고관절 수술, 갑상샘암 등 여러 건강 문제를 겪은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다른 여성들의 사례를 엮어 젊고 아픈 여성들이 겪는 고충과 시스템의 문제를 깊게 파고든다. 아픈 몸으로 인해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났다는 기분은 결국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신체적 통증이 우울이나 불안 등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나의 경우 학창 시절부터 천식이나 위장병 등 자잘한 병을 달고 살았다. 다행히 목숨에 위협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성인이 된 후 21살쯤 이유 모를 턱 통증이 생겨났다. 병원에선 관절에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근육 문제이려나 싶어 이런저런 치료를 받아보았다. 얼굴에 주사도 맞아보고, 전기치료도 받아보고, 침도 맞아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얼굴 전체가 빠져버릴 듯한 통증에 1년 가까운 시간 동안을 지옥에서 살았다. 그때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무력함이었다. 또한 소외감도 함께였다. 가장 건강하고 빛나야 할 나이에 매일 통증으로 인해 침울한 얼굴을 달고 살았으니 말이다. 아파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써 노력했다. 밥을 도저히 씹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남들에겐 별것 아닐) 고작 턱 통증 때문에 식사 약속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정상의 범주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갖은 수를 썼다. 다행히 턱 통증은 이제 진통제로 해결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통증은 수시로 찾아오지만 이젠 무시하는 방법을 알아 그냥 살고 있다.

최근엔 병원에서 관절 문제를 발견했다. 관절염까진 아니지만 그저 나이에 비해 관절이 안 좋으니 조심하란 경고 정도였다. 치료를 받아보았지만 가만히 누워있어도 무릎이 시큰거리고 열감이 느껴졌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야 할 때에, 전 같으면 당연히 계단을 이용했을 테지만 지금은 한참 기다려서라도 엘리베이터를 탄다. 이러한 통증들은 계속해서 날 공격한다. 24살의 나이에 고작 한 층짜리 계단을 내려가지 못해 머뭇대는 나 자신을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젊음 뒤에 따라붙는 건강이란 수식어는 환상일 뿐이다. 물론 통계적으로 보아 당연히 50대보단 20대가 건강할 것이다. 그러나 아픈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가벼운 통증의 수준을 넘어 책에 나온 사례처럼 일상생활이 어렵거나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계속해서 비가시화된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이민자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에 대해 그들이 여기 있다고 알려야 한다. 젊고 아픈 여성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암을 이겨낸 아름답고 젊은 여성, 병을 이겨내고 커리어를 일궈낸 용감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는 집어치우고 말이다. 그들은 그저 더럽게 아프고 힘든 한 인간일 뿐이다. 


생리와 생리통에 대해서도 우리 사회는 더 활발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인류의 절반이 생리를 하고, 그들 중 대다수가 한 달에 한 번씩 장기가 뽑아지는 고통을 겪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리와 생리통은 여전히 쉬쉬해야 할 문제다. 예전에 어떤 또래 남성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pms란 단어를 꺼냈는데, 그 남자가 내게 목소리를 낮추라며 부끄럽단 얼굴을 했다. 살면서 본 멍청한 행동들 중 손에 꼽는 일이었다. 나는 연쇄살인이나 근친상간에 대해 떠들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내 몸의 증상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나를 무슨 부끄러운 줄 모르고 험한 말을 떠들어대는 사람으로 보고 있었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왜 생리와 생리통이 여자들끼리 조용한데 모여 쉬쉬해야 하는 주제인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에게 수치심을 안긴다. 개방된 공간에서 생리에 대해 토론할 수 없게 된다면 결국 여성들의 목소리는 광장 바깥으로 밀려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수치스러워하게끔 만들어온 역사는 뿌리가 깊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려는 요소는 너무 많아 하나하나 꼽을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여성 신체에 대한 간섭은 결국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젊고 아픈 여자들』에선 신체적 혼란을 겪는 이들에게 냉철한 해답을 주진 않는다. 자신의 사례를 비롯해 여러 사례를 엮은 경험담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들은 모이면 힘이 된다. 의사가 나를 진지하게 진찰해 주지 않는단 기분이 오롯이 나만의 착각이 아님을 알았다. 내 몸과 통증에 대해 더 솔직해지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음 또한 알았다. 그러나 책을 보는 한 개인이 바뀌는 것으론 역부족하다. 젊고 아픈 여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회 전체의 태도가 필요하다. 


 



당신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갓 졸업한 여성이거나, 성적으로 가장 왕성하다고 하는 서른 살이다. 그런데 통증에 시달리거나, 몸의 어딘가를 절개해야 하거나, 면역계가 약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강하거나, 종양이나 불완전한 판막이 있거나, 혈압에 이상이 있다. 당신의 '건강한' 친구들에게 당신은 낯선 존재가 된다. 그들은 아마 당신을 이해하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다. 당신이 만나는 나이 든 여성들에게도 당신은 낯선 존재다. 그들은 "그렇게 젊은 나이에"라고 말하며 쯧쯧 혀를 찬다. 19p


우리도 우리가 너무 일찍, 우리 몸이 고장 난 느낌이 오리라 예상할 나이가 되려면 아직 몇십 년이 남은 나이에 병이 났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아프기엔 너무 젊은 나이 같은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아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프다. 180p


인종과 계급에 관한 고정관념이 환자가 통증을 느끼는 정도에 대한 의료인의 시각에 영향을 주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지만, 어떤 그릇된 믿음은 출신 배경과 상관없이 여성에게 훨씬 폭넓게 영향을 미친다. 2001년의 한 연구에 의하면 의료인들은 여성의 통증을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남성의 통증과 비교해 여성의 통증을 "감정적"이고 "심인성"이며 "진짜가 아닌" 것으로 치부해 무시하는 사례가 더 흔하며, 신체적으로 매력이 있는 여성의 경우 심지어 아프지 않다고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절이 아파서요"라고 말했을 때 "그렇지만 당신은 건강해 보이는데요!"라는 반응을 들은 적이 있는 우리에게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그리 놀랍지 않다. 222p


자신의 병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젊은 여성, 또는 주변 남성들에게 변화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우아한' 여성을 미화하는 것은 아마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보는 그러한 인물들은 여성의 경험을 편리한 관념으로 축소하는 경우가 너무나 흔하다. 몸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개인의 문제라는 관념, 혹은 웃는 얼굴로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관념. 그리고 주류적인 아름다움을 지녔으면서 그렇게 미소까지 잃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다는 관념. 338p


이제 나는 내가 천하무적의 동년배들과 같을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일상생활의 평범한 것들이 마법처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등산을 해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생각은 더 자주하게 됐다. 34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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