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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수부 Dec 22. 2022

참을 수 없는 욕망을 먹어치우자

루카 구아다니노 <본즈 앤 올>




먹는 행위는 사랑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사랑을 하면 먹는다. 물론 상대방이 아닌 음식을 말이다. 의식주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식은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그와의 첫 데이트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디서 먹느냐이다. 두 사람이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는 행위는 상대방에 대한 많은 정보를 확인시켜준다. 손에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서도 그가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란 것과, 야만적으로 음식을 쩝쩝거리지 않는 사람이란 것을 말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 또한 그에 대한 믿음을 보여준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가장 공격에 취약해지는 순간은 먹을 때와 잘 때이다. 손에 포크를 들고 조용한 곳에 마주 앉아 음식을 먹는 행위는 당신과 나는 서로를 공격하지 않을 거란 무의식적 믿음에 기인한다. 

그러나 마주 앉은 서로가 식인종이라면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질까. 이 영화에서 식인종끼리 먹지 않는단 룰 따윈 없다. 설리반이란 인물의 대사를 통해 설명되는 식인종 사이의 룰과 특성은 느슨하다. 그들은 여타 다른 좀비물처럼 먹지 않고선 못 견디는 존재들이 아니다. 일반식을 먹고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지독한 굶주림이 찾아오고, 반드시 먹을 수밖에 없다. 또한 식인종끼리 먹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느슨한 설정은 되려 긴장감을 생성한다. 영화에서 사랑을 하는 두 십 대 남녀가 언제 서로를 잡아먹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있자면 그러한 긴장은 금방 해소된다. 먹고자 하는 본능보다 강해 보이는 것은 서로의 곁에 있고자 하는 이들의 애처로움이기 때문이다. 

이 식인종들은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식인마 한니발hannibal the cannibal과는 조금 다르다. 한니발은 오로지 유희를 위해 먹는 이다. 게다가 자기 딴에는 윤리를 위해 먹는다. 그는 무례한 자들을 먹는다. Eat the rude라는 타이틀에 맞춰 자기 나름의 인간청소를 하는 것이다. 기왕 죽을 거 아까우니 먹어치우잔 절약의 면모까지 보인다. <본즈 앤 올> 속 식인종들은 이러한 포식자 혹은 권위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들은 약자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늘 폭력과 굶주림에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식인 행위는 퀴어적 모티브로써 작동한다. 로드무비의 형태와 성장기 청춘의 사랑 이야기 플롯은 유사한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게끔 한다. 

마지막에 결국 한 명이 한 명을 잡아먹는 결말은 불 보듯 뻔했다. 애초에 이야기는 누군가가 누군가를 잡아먹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늘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욕망은 소유욕이다. 때로 두 개는 혼동되기도 한다. 사랑이란 복합적 감정의 집합체인데, 가장 큰 부분은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이다(이러한 욕망은 결혼이란 제도로 보호된다). 매런과 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10대 남녀이다. 그 나이 대에 주어지는 가장 큰 숙제는 충동을 조절하는 것이다. 집을 뛰쳐나가고 싶고, 마음에 안 드는 놈을 패버리고 싶고, 공부 대신 게임을 하고픈 충동을 말이다. 매런과 리는 이러한 충동들 외에도 사람을 먹고자 하는 충동이란 더 큰 숙제가 있다. 그러나 식인종이란 특성으로 인해 테두리 바깥으로 밀려난 그들은 충동에서 자유롭다. 같은 충동을 느낀다는 동질감이 유대를 형성하고, 유대를 통해 비로소 그들은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끝없는 허기에 시달릴 것을 안다. 말 그대로의 허기와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허기에 말이다. 폭발하는 애정에 시달리는 청춘의 사랑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지독한 애정으로 서로가 서로를 파멸시키기 전에 말이다. 사랑이란 결국 아무리 먹어치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이다. 그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그가 곧 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길 욕망한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그 욕망을 그들은 상대방을 먹어치움으로써 이루어낸다. 나를 먹어달라는 리의 요청은 사랑이 이루어낼 수 없는 불가능함의 발현이다. 그러니 이들의 사랑이 비극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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