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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hkim Dec 02. 2024

퐁피두 센터: 마티스의 그녀와 썸 타러



“이 그림의 여자, 니가?”

생전에 어머니가 삼십 년 전 퐁피두 미술관에서 구입해 내 아파트 벽에 걸어 놓았던 앙리 마티스의 그레타 프로조의 초상화 포스터를 보고 저 그림 속 인물이 나를 그린 거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다. (참고로 제 어머님은 부산사투리를 쓰셨습니다.)


“니캉 마이 닮았다.”

의외였다. 마티스의 그녀와 내가 닮았다니…



그녀를 알게 된 것은 삼십 년 전 파리에 첨 갔을 때이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승객과 담소를 나누던 중 지나가는 소리로 퐁피두 센터에서 마티스의 특별 회고전이 열린다 하는 말을 들었다. 귀가 번쩍 뜨이며,


“그래? 꼭 가봐야지.“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 바로 전시장으로 향했다. 전시가 거의 막바지에 들어서일까? 관람객들이 표를 사려고 그 큰 건물을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줄이 보였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그날은 너무 늦어서 못 들어간다며 담날 문 열기 두 시간쯤 전에 와서 줄을 서면 가능할 거라 하였다. 담날 아침 여덟 시. 봄비에 우산을 받고 기다란 줄의 젤 앞에 서서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마티스의 거대한 회고전을 보았던 기억이 있다.



나의 상상을 뛰어넘었던 전시회였다. 마티스는 중학교 때 미술 교과서에 나온 손바닥 만한 그의 그림을 보고 좋아하기 시작했는데 퐁피두 센터 전시회는 어마무지하게 큰 그림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센터로서도 꼭대기 두 층의 전시실을 꽉 채웠던 사건이었을 것이다. 특히 오 층에 위치했던 벽채만 했던 콜라주 작품 들은 색종이들을 덤성덤성 잘라서 더덕더덕 풀을 발라 붙여서였는지 그림 위에 여기저기 남은 풀찌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달력이나 포스터로 보았던 깨끗한 컷아웃 피스가 아니었다.


“이게 원화를 보는 맛이구나!”



그의 콜라주 실물을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뭐라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예술가의 기운을 날 것으로 느꼈다. 오 층의 전시실에는 그런 색종이를 오려 붙인 콜라주들이 사방의 벽들을 꽉 채우며 너풀너풀 바람에 휘날리며 방마다 걸려있었다. 아마도 수십 개는 넘는 듯하였다. 그런 장면을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마티스의 어느 특별전에서도 본 적이 없다.


꿈이었을까?



그 많은 그림들 중에서 뚜렷이 기억하는 작품이 딱 두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 초상화이다. (다른 하나는 필라델피아 아트뮤지움 소장이다.)


그녀의 이름은 그레타 프로조 (Greta Prozor). 작품 설명서에 보니 배우였었고 당시 시인이었던 Pierre Reverdy의 시 낭송을 하면서 자연스레 마티스 친구들 그룹에 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1915-1916년에 제작된 마티스의 가장 주요한 작품 중 하나라고 쓰여있었다.


여러 설명이 이어지지만 나는 마지막에 묘사된 “Intensly present” 표현이 가장 인상 깊었다. ”현재에 강하게 몰입한 모습.“ 나 역시 친구들 사이에 인텐스 (intense) 한 걸로는 유명한 인간이라 그 단어가 뭔 말을 하는 건지 잘 안다. 아마도 그런 느낌 때문에 엄마가 나랑 비슷하다 생각하셨나 보다.



도착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시차의 후유증이 연발로 도착해서 아침에 늦게까지 자고 (내 경험으로 보통의 시차 적응은 첫째 날이 아니라 둘째 날이 제일 힘들다.) 느지막한 오후에 호텔에서 겨우 빠져나와 오분 거리에서 마주한 퐁피두 센터는 첨 보았을 때와 비슷하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개의 긴 줄로 나라비를 서 있었다.


핸드폰으로 인터넷 티켓 사이트에 들어가 잽싸게 한 시간 반 후의 입장권을 산 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저녁도 먹고 예약 시간에 맞추어서 센터에 입장했다. 안내원에게 마티스의 그림들이 있는 방을 물어보니 갤러리 층과 번호를 알려 준다. 저녁이라 빨간색 흰색 불로 치장한 스페이스쉽 같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007 영화에도 나왔었다.) 그녀가 있다는 사 층의 가장 오른쪽 갤러리로 뛰쳐 들어갔다. 그녀를 보자마자 “아! 여기 있다.” 고 반가워하며 거의 소리를 지른 듯하다.


그림을 보겠다고 급히 뛰어 들어온 나이 든 동양 여자하나가 마티스가 그린 어떤 여인의 초상화 하나를 보고 백년지기 친구를 만난 듯 너무나 반가워하니 눈에 띄었나 보다. 점잖게 생긴 미국인인 듯 한 중년 남자가 (미국인의 억양이었다.)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오더니,


“이 그림이랑 같이 있는 사진 한 장 찍어줄까요?” 묻는다.

“아, 그래주시면 너무 고맙지요.”



덕분에 그녀와 사진도 찍고 서베일런스 카메라를 보던 보안요원의 눈에 들어올 정도로 오랫동안 그녀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 나오는데 여전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림과 썸을 탔었나?”


어떤 작품이 눈에 들어오면서 그 작품과 개인적인 연을, 기억들을 만들어가면 또 다른 차원으로 다가오곤 했었다. 자꾸 보게 되면서 사람과 같이 정이 든다고나 할까? 그런데,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을 좀 더 확실히 말하면 타임머쉰을 탄듯한 기분이었다. 서른다섯에 그녀를 처음 본 나는 지금 육십 여섯인데 그녀는 여전히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 옛날엔 나랑 비슷한 또래로 보였는데… 게다가 그녀와 내가 닮았다고까지 어머니가 그러셨는데… 나는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는데도 그녀는 여전하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점점 삼십 년 전 그녀를 첨 만났던 그곳으로 돌아간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술관이 마술관으로 변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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