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의 원래 의도는 뒷배경의 흑인 아줌마를 찍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한 2-3초 정도 지체하며 그녀로 초점을 맞춰놓고 셔터를 누르려는 찰나 그녀 앞에 멋진, 아니 ”간지 나는“ (친구의 말로…) 다른 아줌마가 휙하니 지나가는 거예요. 화들짝 놀라 무조건 셔터를 눌렀네요. 파리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바로 전에 받은 스캔입니다. 생각보다 훨씬 잘 나왔어요. 빨간 운동화도, 은발의 머리카락도, 펑퍼짐하지만 아주 트렌디한 바지도, 그 뒷배경의 간판도 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냥 감으로 셔터를 눌렀을 뿐입니다. 놀래서.
지난번 파리 여행에서 강하게 느꼈던 화두는 “사진에서의 우연성”입니다. 에펠탑 앞에서 찍었던 새가 나르는 장면도 거의 처음 써보는 75mm 렌즈를 테스트할 겸 들고 나섰다가 마음에 드는 장면 하나도 못 찍고 돌아서려는 순간에 갑자기 비둘기 한 마리가 “후더덕” 하고 튀어 오르는 소리만 듣고 그 방향으로 무조건 셔터를 눌렀지요. 저는, 에펠탑을 향해서 뛰어가는 두 여인도 에펠탑의 전신이 찍혔는지도 전혀 보지 못했습니다. Viewfinder에 눈을 맞출 사이도, 정신을 차릴 사이도 없는 1/250초의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두 번의 경우처럼, 아니 많은 경우에, 감으로 셔터를 눌렀을 때 훨씬 더 마음에 드는 장면이 찍히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참 요상한 물건이 카메라 같습니다. 무겁다, 귀찮다, 어깨 아프다, 타령을 해 가면서도 정작 뭘 하는지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그냥 들고만 다녔습니다. 그저, 호텔방을 나서면서 내 맘에 드는 사진을 한 장만이라도 건지게 해 주셔요 하는 짤막하고 성의 없는 기원만 하고 문을 나섰지요.
나머지는 제 몫이 아니더라고요. 수묵화를 치는 느낌이랄까… 수도 없이 난을 쳐봐야 먹의 명암, 선의 수려함, 이런 게 나오는 것 같아요.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까지 걸리는 시간 말이죠.
일본에서 제 포트폴리오를 보아주었던 육십 년 경력의 사진사 푸고씨의 말처럼 아직, 한참을 찍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누가 만 시간의 법칙이라 했던가요? 글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