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삼십 년도 더 전에 처음 방문 했을 때는 인터넷도 없었고 예약시스템도 몰랐을 때였어요. 오라클에서 일하던 삼십 중반쯤 어느 날 사무실 컴퓨터에 샌프란시스코/파리 사박 오일 왕복비행기 가격이 $340쯤 한다는 마케팅 이멜이 뜨더군요. 당시 티켓 가격이 팔구백 불쯤 했어요.
두 번도 생각 안 하고 그 즉시 표를 샀습니다. 그리곤 제 보스에게 “나 일주일 휴가 간다”라고 해 놓고 무작정 혼자서 떠났습니다. 싱글맘의 네 살쯤 되던 아이는 엘에이의 친정어머님을 샌프란시스코로 모셔와서 봐달라고 했고요.
파리에 도착한 담날 오후, 팔레가르니에 매표소 앞에서 sold-out 한 후 도네이션용으로 리턴된 당일 표를 한 장 샀습니다. 다행히 오케스트라 레벨의 앞쪽 자리더군요. 옆에는 아침에 도버해협을 건너왔다는 운동화에 점퍼 차림의 늙수그레한 영국 아저씨가 저와 비슷하게 표를 사서 들어와 앉았고요.
그날이 시즌 오프닝이란 것은 공연이 시작되고야 알았습니다. 네 살쯤 되어 보이는 발레스쿨 아기들부터 시작해서 점점 나이가 올라가면서 마지막엔 프리마돈나들까지 약 천명은 조히 넘을 파리발레단의 모든 식구들이 이십오 명 정도씩 그룹을 지어 횡렬로 나란히 걸어 나와 곱게 인사하고 들어가곤 하는 장면을 끝도 없이 하였습니다. 그날따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어찌나 웅장하던지 가슴이 뭉클하더군요.
세상에 태어나서 발레 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그렇게 아름다운 줄을 첨 알게 된 광경이었지요. 맨 나중에 나오는 프리마돈나들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관객들이 ”용필이 오빠“하고 외치듯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환호를 보내더군요. 아, 이곳 사람들은 발레리나가 록 가수 못지않구나 싶더군요. 그전에 우연히 파리 지하철에서 만나 절 도와준 파리지엥에게 발레를 좋아한다고 했다가 대뜸 누구를 좋아하니 하며 몇몇 이름을 나열하는 바람에 당황했던 기억도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예전에 소르본느에서 미학박사학위를 받았다던 미대 선배의 말이 생각났었네요.
”불란서는 발레에 미친 나라야. 하다못해 이태리 오페라도 이곳에서 공연을 할 때면 어떻게 해서든지 발레를 집어넣곤 해.“
마치, 독일이 클래식음악의 본고장이라면 프랑스는 발레의 그곳이었어요.
(왼쪽: 백스테이지에 걸린 의상들
오른쪽: 엘리베이터 내부 벽의 낙서들)
지난 십일월은 사진공부를 시작하고부터 초겨울마다 열리는 파리포토를 가게 된 지 세 번째 되는 해였지요. 가기 전 이젠 제법 친해진 파리의 유명하신 안성규가이드에게 반나절 투어를 예약했어요. 어디에 가보고 싶냐고 하셔서 혹시 팔레가르니에의 백스테지 투어가 가능할까 여쭈었더니 알아보겠다 하시더군요.
( 왼편의 오케스트라 보면대와 의자들
오른편의 리허설하는 연기자들)
그렇게 해서 파리 오페라좌의 한국인 테너이신 윤주인 성악가님의 주선으로 감히 꿈도 못 꾸던 백스테이지 투어를 했습니다. 스태프들만 들어가는 문 앞에서 여권을 맡기라고 할 정도로 외부인에 대한 경계가 삼엄하더군요. 오페라좌의 분장실, 연습실등을 들어가 보고 무대 위도 잠깐 걸어보았습니다. 무대 한쪽에선 리허설이 진행 중이라 다른 곳의 조명을 다 꺼놓아 너무 깜깜해서 사진을 찍었는지 뭘 했는지도 몰랐고요. 사진기를 두 개나 들고 갔는데 잘 나오는 디지털카메라의 셔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못쓰고 찍혔는지 안 찍혔는지 확인도 안 되는 필름 카메라에 겨우 담았지요. 그나마 세 번째 롤을 잘못 감아서 두 롤도 겨우 건졌고요.
(관객석에서 숨죽이고 보았던 리허설 장면)
제가 그곳에서 본 장면들에 비해 찍힌 사진들은 별로예요. 위의 모습은 무대 리허설 장면인데 실제는 너무너무 멋지고 감동적이었어요. 진짜 공연 무대보다 훨씬 날 거 (row)라는 분위기더군요. 예술인들의 연습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일 줄은 미처 몰랐답니다. 감동이 밀려왔어요.
(합창단의 분장실)
뭣도 모르고 호기심으로 구경시켜 달라고 해서 들어갔던 백스테이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알게 되었던 순간이었어요. 예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얼마나 숨 막히게 아름다운 것인지요. 그 바이브가 얼마나 소중한 것도요.
마침, 제가 진행하려는 사진 프로젝트 역시 “프로세스”를 보여주려 맘만 먹고 있었는데 그걸 “왜, 해야 하는지” 확실히 감을 잡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백스테이지)
이젠 슬슬 또다시 점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디로 튈는지는 뛰고 난 후에야 알게 될 거라 더 궁금해요. ㅎㅎㅎ
(왼쪽: 안 가이드님께서 찍어주신 사진이에요. 제가 넋을 놓고 있더군요.
오른쪽: 제 아들은 투어가 끝나자마자 필름현상한 것을 찾으러 간다 해서 먼저 떠난 관계로 빠졌어요. 오른쪽부터 윤테너, 안 가이드, 저, 제 친구스테파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