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못하고 끝난 결혼 12
어쨌든 결론은 이혼이었다.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는 없다. 난 교통사고처럼 당한 피해자이고 그는 가해자다. 현재와 상간녀에게 신분상 불이익을 주지 않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역시 돈 뿐이겠지. 현재의 통장에 있는 우리의 공동 예금도 받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지분도 포함되어 있으니.
현재에게는 일단은 협의 이혼을 하고,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고 관계를 다시 회복하고 싶다면 이혼 절차를 다 밟고 다시 만나자고 말을 던져봤다.
"현재야. 우리 이혼하자. 군인 공제회에 우리 같이 넣었던 돈 천오백도 다 나한테 위자료로 줘. 그렇게 이혼하고 다시 만나자."
그는 내 말이 잘 이해가 안 되는 눈치였다.
"그렇게 하고 다시 재혼을 하자는 거야? 그렇게 하는 이유가 뭐야?"
"너 나랑 다시 잘해보겠다며. 난 그 정도로 믿음이 필요해."
미친 소리 같지만 그가 나에게 한 말들이 진심이라면, 혹은 우리의 인연이 여기까지가 끝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혼 후 재결합하는 부부들도 많으니까. 하지만 난 그가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럼 만약 그대로 이혼하더라도 나한텐 돈이라도 남게 되는 거겠지.
"네가 가진 걸 다 내려놓고 이혼하면, 만약에 나랑 다시 안 만나면 이건 다 내 돈이잖아. 진짜로 다시 나를 만날 마음이 있는 건지 궁금한 거야."
"그럼 자기는 내가 다시 안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위자료를 요구하는 거네? 왜, 저번에 달라고 한 걸로는 모자란 거 같아?"
"모자라지. 몇십 억을 줘도 모자라."
그건 당연했다. 얼마를 받아도 이 상처는 쉽게 치유될 수 없는 것이니.
그런데 현재는 나보다도 더 빨리 계산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저번에 준 돈과 본인이 들고 있는 돈, 총 7천으로 이번 사건 퉁치는 거냐고 물었다. 퉁친다라, 마치 이 모든 일을 다 덮을 수 있다면 이 정도 돈은 쓸 수 있다는 뉘앙스로 들렸다.
"내 진심을 아는 방법이 이제는 돈을 줄 수 있는지야? 그럼 이혼은 협의로 하고 조건은 없는 거야?"
"무슨 조건을 걸고 싶은데?"
나도 이쯤으로 우리 관계가 깔끔하게 정리될 수 있다면, 그가 원하는 것도 하나 정도 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간 합의서 내용 알려줘."
조건이 다른 것도 아니고 그거라고? 그는 그전부터 계속 합의 내용을 알려 달라고 졸라댔었다. 내가 합의 조항에 '우리 둘의 이혼 이후에도 만나지 말 것'을 명시한 걸 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상간녀와 연락 중인데 그 사실을 들키면 안 되니까 나를 통해서 그걸 알아낸 것처럼 하려는 것이리라. 그래서 더욱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궁금하면 그 여자애한테 보여달라고 하던가."
물론 너흰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겠지. 둘의 연락이나 만남이 적발될 시 1회당 천만 원의 위약벌 추가 조항도 있으니까.
한참의 통화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그는 나에게 마음이 없다'였다. 당연한 것을. 왜 이 사람에게 한 번 더 속아주려 했던 걸까. 내 마지막 미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가 묻는 말들, 그 여자와 구체적으로 어떻게 끝낸 건지, 또 나랑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또 이 모든 걸 다 아는 우리 집에다가는 이 사태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수습할 건지에 대해선 여전히 함구하고 있었다. 하겠다던 노력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난 정말 궁금했지만 내뱉고 싶지 않았던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나랑 이혼하면 걔한테 갈 거냐고.
"아무런 조건 없이 보내주는 거야?"
그놈의 조건. 역시 합의서 내용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이혼하면 자유의 몸인데 걔랑 만나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가. 조건 없이 보내줄 거냐는 말 자체가 그 합의서 내용을 염두에 두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고는 자기도 자기의 진심에 대해 생각을 해 보겠다고 했다. 도대체 미안하다고 잘하겠다던 사람이 본인의 진심을 뭘 더 생각해 본다는 걸까. 여태 나한테 이미 둘은 끝났고 애초에 오래갈 사이도 아니었다던 그 말들은 다 거짓말이었다는 거밖에 더 되니. 답답하고 화가 나서 몇 번 성질을 긁었더니 그는 쉽게 본심을 드러냈다.
"너 조건 들어줄 거야? 나 걔 다시 만날래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