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못하고 끝난 결혼 3
일생 한 번뿐인 신혼여행은 평생 다시 못 가볼 곳으로 다녀오고 싶었다. 언제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몰디브로 선택했다. 리조트 비용은 5박에 천만 원에 육박했지만 결혼식에 비용을 안 들인 만큼 여행에서는 최대한 아끼고 싶지 않았다.
여행 전날까지도 면세 쇼핑을 다 마치지 못해서 현재에게도 필요한 게 없냐고 물었다.
“아, 마침 이 대위가 아내 향수 선물을 부탁했는데 여자들 취향을 모른대. 자기가 대신 추천 해줄래?”
면세 향수가 저렴하긴 하지. 그렇지만 향수란 게 취향을 타니까 섣불리 사다주기엔 어렵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향수는 샤넬 가브리엘이다. 이게 그 아내분 마음에 들길 바라며 추천해 주었지만, 결국 고민하다가 현재는 동료의 부탁을 거절했다고 했다.
몰디브의 햇볕에 얼굴이 빨갛게 익어버릴 테니 진정시킬 마스크팩도 챙겨야 했다. 올리브영에 들러 팩을 사고, 뭘 더 사볼까 하던 차에 현재가 피부를 자외선으로부터 원천 차단하는 골프용 uv 패치를 찾았다. 그는 나를 만나기 이전에는 30년 넘는 인생 동안 선크림도 바르지 않았던 사람이다.
다음날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 나는 일 년여만의 출국이 너무 신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일주일 넘는 긴 여행이 그저 기대되기만 했다. 그런데 새벽 일찍 일어나 공항까지의 운전이 너무 고된 탓인지, 현재는 평소보다 피곤해 보였다. 나 혼자 들떠있는 느낌이었다. 싱가포르를 경유해 몰디브로 들어가는 일정이었는데 비행기에서도, 경유지에서도, 늦은 입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룻밤 지내는 호텔에서도 그는 계속 피곤하기만 했다. 그건 그저 기나긴 비행 일정 때문이었을까.
리조트에 들어서니 정말 지상 낙원이라는 말에 걸맞게 아름다웠다. 그런 몰디브의 바다를 보면서도 현재는 피곤을 숨기지 못했다. 이전과는 다른 그의 텐션에 나까지 덩달아 기분이 다운됐지만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분위기도 띄우고 장난도 더 많이 걸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그의 컨디션과 기분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딜 가든 그가 기복이 심한 내 기분을 신경 쓰면 썼지, 이렇게 내가 눈치를 보게 된 건 처음이었다. 이상했지만, 곧 서른일곱이 되는 그의 체력이 예전과 다를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몰디브의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했다. 내 생에 그렇게 반짝이는 하늘을 본 건 처음이었다. 하늘을 내내 보고 있는데 별똥별이 떨어졌다. 내 기억에 별똥별을 본 것도 그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소원을 빌었다. ‘시험도 빨리 붙고, 현재와 평생을 함께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는 핸드폰을 만지느라 별똥별을 보지 못했다.
5박의 몰디브 일정이 눈 깜짝할 새에 끝나고, 다시 귀국길 싱가포르에서 하루 동안 레이오버를 하게 되었다. 회사 사람들과 지인들 선물을 사기 위해서라도 쇼핑을 해야만 했지만, 현재는 역시나 지쳐 있었고 시큰둥했다. 내가 억지로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선물할 만한 것들을 골랐다. 그는 갑자기 상남자를 자처하는 본인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미피 인형을 보며 자기 사무실 책상에 놓고 싶다고 했다. 의아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자기야. 내가 작년에 괌에서 사 온 키티 키링 달아줬더니 창피하다고 가방 지퍼 안쪽으로 숨기고 다녔잖아! ”
“그냥... 귀여워서. “
이젠 취향이 귀여운 쪽으로 변했나?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타기 전 면세품 구역에서 친구들 선물로 거울을 사가기로 결정했다. 연핑크색 거울 안쪽에 반짝이가 움직이는 옛날 아기들 장난감 같이 생긴 거울이었다. 4+1 상품이란 걸 보고 현재는 그걸 자기 비행낭에 넣어 다니며 쓰겠다며 하나를 챙겼다. 이런 공주 거울을 쓰는 남자라니,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