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못하고 끝난 결혼 4
신혼여행이 끝난 직후, 현재의 군생활은 갑자기 바빠졌다.
“나 여행 다음날까지만 휴가 냈어. 이번 주말은 긴급 대기 근무가 있고, 다음 주는 후속 대기인데 부대에서 자야 한대.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일주일 파견 가야 해서 이번 달에는 자기 보러 거의 못 오겠는데...? 심지어 크리스마스에도 근무가 잡혔어. “
“저번 달에 우리 가족식이랑 이번 달 신혼여행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랑 근무 바꾼 것 때문에 그런 거지? 보고 싶어 죽겠지만 어쩔 수 없지 자기야.”
일 때문인데 그를 탓할 수는 없었다. 그저 현재가 보고 싶어서 어떻게 그 시간을 버틸지가 막막했다.
장거리 연애와 주말 부부란 그런 것이다. 연애를 포함해 3년을 주말만 손꼽아 기다리며 만나왔고 나에겐 익숙한 일상이었다. 현재가 부대에서 자거나 파견 근무를 가도 저녁 내내 핸드폰을 붙잡고 통화를 하고, 얼굴이 너무 보고 싶으면 페이스타임으로 영상 통화를 하며 그가 내 옆에 있는 것처럼 지내 왔기에 괜찮았다.
그런데 우리가 만나지 못하던 그 3주간 그는 달라졌다. 매 저녁 퇴근 이후 한 시간은 기본으로 하던 전화 통화도 줄고, 여행 때부터 줄곧 피곤하다고 했던 것처럼 매일 피곤하다며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사실 변화는 그전부터였다. 내가 이상하다고 눈치채지 못한 것일 뿐. 생각해 보니 신혼여행 한 달 전인 11월부터 현재는 이상할 만큼 빨리 잠들기 시작했었다. 오전 시간의 이른 비행이 너무 힘들고 아침에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며 저녁 8시면 피곤해서 잔다고 했다. 다음 날이면 새벽 6시도 되기 전에 일어나서 이른 출근을 한다고 연락이 와 있었다.
회식도 잦아졌다. 회식을 좋아하지 않던 그였는데 교관님의 고별 비행 회식, 사무실 중대장의 인사 발령 회식, 비행 끝나고 부대 사람들과의 저녁 식사, 그냥 술 한잔 하기로 한 급 모임 등 갑자기 저녁 시간에 혼자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어 보였다. 자연스레 그 시간엔 나와의 연락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간 서로가 모임이나 회식이 있을 때 그걸 빌미로 싸우거나 싫은 소리를 한 적이 없다. 서로의 개인 사이고 사회생활이므로 터치할 이유도 없고,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나 나나 적당히 마시고 알아서 집에 늦지 않게 귀가하며 중간중간 연락을 잘한다는 것을 알기도 하고.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연락의 빈도도 줄고, 마치 다른 사람처럼 나랑 대화를 이어 나갈 마음도 없어 보이고 아예 애정이 없어진 것 같은 그의 태도는 낯설었다. 뭔가 이상함을 직감했다.
답답했다. 이유를 알고 싶었다.
“자기 요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걱정이나 고민 있으면 나한테 다 털어놔도 돼. “
사실 걱정이 되는 건 아니었다. 걱정보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그런 거 아니야...”
계속 아니라고만 하며 시간은 흘러갔다. 2주쯤 지났을까, 나의 계속되는 물음에 현재가 입을 열었다.
“자기 때문이 아닌데, 솔직히 내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아. 이유는 나도 모르겠어.”
3년, 사랑의 유효기간은 충분히 지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조금의 마찰도 없던 우리 관계였기에 그의 마음이 식은 이유는 알고 싶었다.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었는지, 혹은 그저 얼굴을 오래 못 봐서 그런 건지. 답답함과 속상함에 통화하며 울음이 터져버렸다.
“현재야, 이제 내가 없어도 살 수 있어? 나 없으면 죽을 거라고 했잖아. “
“자기 없으면 많이 힘들겠지...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어. 미안해. 나중에 난 벌 받을 거야. 자기를 이렇게 힘들게 한 거에 대한 대가. 그리고 평생 자기한테 미안함을 갖고 살 거야... “
그의 대답은 어쩐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붙잡을수록 현재는 점점 차가워졌다. 진짜로 헤어지고 싶은 거냐는 물음에 침묵으로 일관했을 뿐이다. 결국 그 후 3일 간 연락조차 없었고, 12월 마지막 주에 서울로 오겠다며 카톡 한 개만 보내왔다.
“연락 많이 기다렸지. 오늘이 크리스마스인데 옆에 있어주지도 못하고 힘들게만 해서 너무 미안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이 답답하게 내 연락만 기다려야 하는 니 마음이 얼마나 힘들지 알면서도 선뜻 연락하지 못했어. 금요일에 얼굴 보러 갈게. “
우리의 애칭이 아니라 낯선 ‘니’라는 단어를 보고 나는 헤어짐을 말하러 오는 것임을 직감했다. 게다가 얼굴만 보러 오는 거라니.
그런데 혼인신고 6개월, 결혼식 3개월 만에, 이렇게나 짧은 결혼에, 아무런 이유 없이 권태기로 이혼하는 부부도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