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도 못하고 끝난 결혼 6
현재의 외도 정황을 확인하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나가서 점심 먹고 가전을 보자는 그를 평소처럼 대할 수가 없었다.
"현재야, 난 지금 아직 너를 백 프로 믿을 수 없어. 관사로 이사하는 것도 더 생각해 볼게. 잠시 서울에 있다가 내 마음이 안정을 찾는 대로 천천히 결정할래. 그래서 오늘 당장 너랑 가전 보러 갈 생각도 없어."
사실 그의 얼굴을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한 공간에 있는 것 자체를 견딜 수 없었다.
"오늘은 그냥 빨리 집에 가서 쉬어."
집에 가라는 나를 현재는 별말 없이 그냥 한번 꽉 안아주고는 정말 가버렸다. 평소 같았으면 금토일을 함께 보내고도 시간이 모자라 월요일 새벽에 일어나 강원도로 달려가 출근하던 그였는데.
현관문이 닫히자마자 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믿고 싶지 않았던 상상이 현실이 된 것에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다시 변호사와 상담을 진행했다. 내용인 즉, 남편에게 유책 사유가 있기 때문에 나는 이혼요구를 더더욱 들어줄 이유가 없고, 증거를 모아 상대방을 특정하면 상간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제 내역은 정황 증거일 뿐이고, 직접적인 외도의 현장을 잡거나 연인 관계가 특정되는 대화 내역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난 현재가 다시 서울에 올 때까지 그의 핸드폰을 볼 방법이 없다. 따라서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낼 방법도 없다. 주말부부인 게 다른 의미로 이렇게 야속할 줄이야. 일단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까지 일단 현재에게는 내가 눈치챈 것을 숨겨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대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직접 누구랑 뭘 하는지 알아내는 것. 며칠 후 나는 친구와 이른 새벽 강원도로 향했다. 분명 출근 전인 시간, 독신자 숙소인 현재의 집 앞에서 그의 차를 찾을 수 없었다. 아침 7시, 현재에게 카톡이 왔다.
“잘 잤어? 나 오늘도 일찍 출근해요!“
그런데 그 시각 현재의 차는 부대가 아니라 내가 있는 그의 집 앞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집에서 잠을 자지 않은 것이다. 매일 누군가와 자고 아침에 잠깐 자기 집에 들렀다가 출근하는 수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구나. 같이 출근하는 모습이나 집을 드나드는 사이라는 게 들켜서는 안 되는 사내 불륜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생각보다 거짓말이 자연스러운 현재의 모습에 난 한번 더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한테 한 말들 중에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거짓말인 걸까?
그날 저녁 현재는 친한 친구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며 다른 친구 한 명과 원주로 조문을 간다고 했다. 나는 그 뒤를 밟았다. 분명 현재가 차에 누군가를 태웠는데 그건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장례식장에 간다던 현재의 차는 원주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춘천의 한 모텔 주차장에서 그의 차를 발견했다. 들어가는 장면을 찍지 못했기에, 나는 운전을 도와준 친구와 거기서 함께 자고 아침에 둘이 같이 나오는 모습을 찍기로 했다. 2024년 12월 31일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을 불륜 증거를 잡으며 맞이해야 하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우리는 알 수 없었다.
낯선 숙소에서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해가 밝았고 나는 현재의 차가 보이는 곳에 주차된 차 안에서, 친구는 로비의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체크아웃 시간 즈음 현재와 함께 단발머리의 여자가 내려왔다. 내 또래일까, 어쩌면 나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그들은 여느 연인처럼 보였다.
새 해 첫날을, 분명 외도를 한다면 그 여자와 보낼 것이라고 예상하고 현재의 뒤를 밟은 것이었는데 정말 내 예상이 맞을 줄이야. 이렇게나 금방 꼬리를 잡힐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직접 내 손으로 그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으며 실소가 나왔다. 내 남편이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모든 증거를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