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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간녀란 존재

시작도 못하고 끝난 결혼 7

by 임선민

춘천의 모텔을 나온 현재와 상간녀는 뜻밖의 장소로 향했다. 하남 스타필드였다. 거기서 또 놀랍게도 군인 혹은 군무원, 즉 직장 동료로 보이는 다른 이들과 식사를 했다. 둘은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팔짱을 끼며 연인 사이임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 둘의 관계를 아는 내부 사람들까지 있다니. 얘네의 불륜을 알면서 눈감아주거나 더 나아가 동조를 해주고 있다니. 군은 생각보다 놀라운 조직이다.


같은 시간 현재는 두세 시간에 한 번씩 나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오랜만에 장례식장에서 친구들 만나서 어제는 얘네랑 놀다가 잤고, 아직 원주야. 오후 늦게 집 들렀다가 오늘 새해 첫날인데 출근 한번 해야 할 것 같네."

이젠 모든 게 거짓말임에 웃기기 시작했다. 아니. 난 지금 널 지켜보고 있는 걸.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둘은 다시 강원도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출근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현재는 역시 자기 집이 아닌 여군 관사에서 나왔다. 매일 저녁 저길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겠구나. 상간녀도 군인일까? 만약 맞다면, 같은 부대로 발령받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외도 기간이 길지 않은 것 같기에, 서로 알게 된 지도 얼마 안 됐을 거라고 나름의 추측으로 얻은 결론이었다.


그 후 긴 기다림 끝에 상간녀의 정보도 알아낼 수 있었다. 이름은 김수정. 나보다는 두 살이 어렸다. 현재가 근무하는 부대 바로 앞, 군단에 근무하는 군무원이었다. 같은 부대에서 근무할 거라는 내 예상이 빗나갔다. 둘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된 건지 알고 싶었다.


문득 머릿속을 스쳐가는 기억이 있었다. 2년 전, 현재가 부대 내 인사과에서 1년 간 근무를 하던 시절 같은 사무실로 신규 발령을 받은 군무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그 당시 현재는 새로 온 주무관이 어린데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며 짜증 난다고 했었다.

"주무관은 쓰레기 하나 치우질 않아. 그리고 여자 사투리 쓰는 게 귀엽다고 하는데 나는 이해가 안 가더라? 짹짹거리고 듣기 싫어 죽겠어."

그런데 그게 바로 저 여자였다. 짹짹거리는 사투리를 쓰는.


처음부터 저 여자애가 신경이 쓰였던 건지, 아니면 어느 순간 호감이 생긴 건지, 애초에 관심이 있었는데 아닌 척 나한테 부정적으로 언급한 건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차라리 그때 눈이 맞아서 나랑 헤어지고 쟤랑 결혼을 하지 그랬니? 그랬다면 내가 이렇게 불륜 증거를 잡으러 먼 길을 올 일도 없고, 직장을 그만두지도 않았을 거고, 상처받는 일도 없었을 텐데...


이젠 상대 여자의 정보도 알아냈으니 내가 할 일은 소송을 준비하는 것뿐이었다. 내가 살다 살다 상간녀 소송을 준비하게 될 줄이야. 모텔에서 나오는 모습과 스킨십 장면, 집을 드나드는 걸 포착한 게 있으니 증거는 이 정도면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상간 소송에서는 증거 싸움도 물론 중요하지만, 상간자 측에서 배우자가 유부남임을 알아야만 승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또 다른 넘어야 할 산이 생겨 버렸다.


혹시 현재가 나랑 결혼한 걸 숨기고 저 여자랑 만나는 거라면...? 왜냐하면 우리는 결혼식을 크게 알리지 않았으니까. 결혼식 전에 여자애가 군단으로 부대를 옮겼을 테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리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도 불과 한 달 전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남자와 어떻게 불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차라리 현재의 결혼 사실을 저 여자가 몰랐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상식일 뿐이고 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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