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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Aug 13. 2023

[세계여행] D+40 포토시

짧고 강렬했던 광산도시

지금까지 여행하면서 탔던 수많은 야간버스에서는 늘 생각 외로 잠을 잘 잤기에 포토시로 향하는 야간버스에서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페루에서와는 다르게 좌석 사이에 커튼이 없어 약간 불편한 느낌이 들었고 10시가 넘어서도 잠이 잘 오지 않다. 아마 버스 화장실이 고장 나 있던 것 같은데 얕은 잠에 들었던 새벽 2시 정도에 불이 다 켜지더니 화장실을 다녀오라고 버스가 휴게소에 정차했다. 한밤중에 잠이 한 번 깨니 그 이후에도 푹 잠들지는 못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고 버스가 포토시에 도착함과 동시에 잠이 깼다. 피곤한 상태에서 핸드폰으로 위치를 확인해 보니 생각보다 버스터미널이 시내에서 많이 떨어져 있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스터미널을 벗어나 도로로 나갔는데 소지품 주머니에 핸드폰이 만져지지 않았다. 자다 깨자마자 버스에서 내리는 과정에서 길을 확인하고 핸드폰을 그래도 좌석에 두고 내린 것이다. 완전히 큰일 났다는 생각으로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뛰어가니 버스가 승객과 짐을 다 내리고 막 출발하려고 하고 있었다. 급히 기사에게 달려가 버스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다행히 자리에 있던 핸드폰을 챙겼다. 내가 내리자마자 버스는 차고지로 출발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느껴진 엄청난 추위와 더불어 핸드폰을 잃어버릴 뻔한 것까지 강렬한 시작이다.



버스터미널에서 시내까지 거리가 아무리 멀어도 택시는 타고 싶지 않아서 현지 버스를 잡아탔다. 남미의 버스는 대부분 구글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노선도도 없어서 창문 앞에 붙어있는 행선지만 보고 타야 하는데 대충 시내로 가는 것 같은 버스를 아무거나 잡아 탔다. 이제는 이 정도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워낙 아침 이른 시간이라 버스에서 내려서 숙소로 향하는 길에 있는 자그마한 중앙광장에도 사람이 없어서 정신없던 라파즈와는 대조를 이뤘다. 그래도 듣던 것처럼 완전히 볼  게 없지는 않고 식민지 양식의 건축물들이 생각보다 많이 남아있어 아기자기한 소도시의 느낌이었다. 나중에는 생각보다 거리에 사람이 많아졌지만 워낙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부담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라파즈에서 우유니 전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조금은 무리하게 가는 길에 있는 포토시로 왔지만 이곳에서 유명한 광산투어 외에는 크게 계획한 것은 없었다. 대충 첫날은 쉬며 체력을 회복하고 둘째 날 오전에 광산투어 후에 저녁에 우유니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조금 쉬다 광산투어 예약을 위해 투어사에 방문해 물어보니 다음날보다는 당일 오후 투어를 추천했다. 정말 휴식이 필요했지만 얼떨결에 오후 투어를 예약하고 시간이 남아 숙소 바로 앞에 있던 구 조폐국 박물관에 들어갔다. 여기도 마음 같아서는 다음날 가고 싶었지만 다음날이 일요일이라 이 날 오전이 마지막 기회였다. 입장권과 더불어 돌이켜보면 딱히 필요는 없었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티켓도 구매하고 박물관에 들어섰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포토시는 은광 때문에 볼리비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로 여겨졌다. 전 세계에서 사용되던 은의 대부분이 여기서 채굴되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은화로 동전을 만드는 조폐국도 여기 들어섰는데 지금 박물관으로 바뀐 후에도 전에 은을 가공하는 데 사용하던 기계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외에도 그림 몇 점, 은화, 은 공예품, 광물이 전시되어 있고 가이드의 설명까지 제공되는데 내용이 그다지 알차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 굳이 시간을 내어 방문할 정도는 아닌 듯했다.



투어사에서 점심을 든든하게 먹고 오라고 해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찾아보니 전에 세계테마기행에서도 본 적이 있던 칼라푸르카라는 음식을 찾았다. 맛은 고기와 곡물이 들어간 매운 수프인데 그릇 가운데에 가열한 돌을 넣어 끝까지 온기를 유지하는 방식이 특이한 음식이다. 추운 고산의 도시에서 맵고 뜨거운 수프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마치 꾸덕하면서 칼칼한 된장찌개를 먹는 느낌이라 흰쌀밥이나 칼국수 말아먹고 싶었다. 맛은 남미에서 먹은 음식 중 거의 제일 맛있었지만 배가 부를만한 음식은 아니라 살짝 걱정은 되었지만 뭐 그렇게까지 힘들겠어하는 생각으로 투어사로 향했다. 시키는 대로 안 하는 오만한 여행자는 업보를 치르게 된다.



투어사에 도착하니 사장이 노트북으로 우영우를 보고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볼리비아 아저씨가 나도 안 본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으니 뭔가 이질감이 들면서 웃겼다. 내 예상으로는 투어 참가자가 몇 명 되지 않을 줄 알았지만 15명 정도가 모였고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미국이나 유럽 관광객이었다. 확실히 남미사람들이 많던 여느 투어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광부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광산이 있는 곳까지 차를 타고 올라갔다. 오늘은 광부들이 일하지 않는 날인데 관광객들이 떼거지로 광부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니 현지인들이 보기에는 꽤나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중간에 3명은 다른 그룹으로 빠졌는데 투어를 할 수 있는 광산이 여럿 있는 모양이었다. 관광객들이 접근하기에 쉬운 난이도의 광산이 따로 있고 내가 참가한 투어는 조금 난이도가 있는 광산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자세히 보면 광산 입구가 붉게 칠해져 있는데 전통신앙에서 8월은 신성한 달이라 며칠 전 광부들이 라마를 제물로 바치고 그 피를 뿌린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저곳 이외에도 바닥이나 입구 옆 예수상이 있는 방에도 라마의 피가 가득했고 한쪽에는 제물이 된 라마의 살가죽이 버려져 있었다.



광산 입구부터 들어가는 길은 생각보다 평탄했지만 역시 먼지가 많이 날렸다. 평일이면 광부들이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 현장이었겠지만 주말이라 그들을 방해하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또,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일하는 현장에 관광객으로서 돌아다닌다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은 덜 수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분 정도 비교적 수월한 길을 걷다 보니 다른 갱으로 내려가는 조그만 구멍이 나왔고 가이드가 여기서부터는 난이도가 있으니 휴대폰과 물을 집어넣고 손을 자유롭게 하라고 했다. 정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만한 구멍으로 미끄러지고 기며 10여분을 내려갔다. 투어사에서 장갑을 주지 않아서 돌에 부딪힌 손에서는 피가 났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힘들기 시작했다. 사실 그동안 고산에 나름 적응해서 크게 느끼지 못했지만 기본적으로 산소가 부족한 데다 먼지도 많이 날리고 결정적으로 갱 안으로 들어갈수록 짙어지는 황 냄새가 견디기 힘들었다. 숨이 상당히 많이 차고 머리도 어지러워서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출구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만 물었다. 카메라를 꺼내는 것조차도 힘이 들어 어느 순간부터는 사진도 찍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숨이 너무 많이 차서 먼지를 다 마시는 것을 알면서도 마스크를 벗어야 했다. 중간중간 양 옆으로 평일이면 광부들이 실제로 일 할 조그마한 갱들이 보이는데 정말 사람이 엎드려서 겨우 지나갈만한 크기였다. 깊이 들어갈수록 온도가 높아져 많은 광부들은 헬멧만 쓰고 맨몸으로 엎드려 일한다고 한다. 아직도 생존을 위해 이런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관광객으로 2시간 동안 들어갔다 왔는데도 힘든데 생업으로 매일 이곳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삶의 무게는 우리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막판에는 너무 힘들어서 슬로바키아 여자애가 사진부탁을 했는데 대충 찍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사진부탁은 받지 않았다.



광산 안에서는 사고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기에 투어를 마치고 광산에서 나와 가이드가 본격적으로 이 광산의 어두운 부분을 얘기해 주었다. 식민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포토시의 광산에서 약 8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지금은 7000명에서 9000명 정도의 광부가 일을 하고 있는데 올해에도 5일에 한 번 꼴인 4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지금의 광부들은 정부나 회사에 고용된 형태가 아닌 개인의 신분으로 갱도에 들어가 작업을 하기에 안전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사망한 케이스는 공식 발표에 의하면 18살짜리 어린 광부인데 작업 중에 기계에 옷이 빨려 들어가 100미터 아래로 추락했다고 한다. 사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조각나 있었다고 한다. 어린이나 청소년이 일하는 경우도 많기에 가이드의 말로는 실제로는 훨씬 어린아이일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투어를 진행한 가이드도 광부 출신인데 8살 때부터 이 광산에서 일을 했다고 하니 충분히 가능한 일일 듯 싶다. 투어 후 숙소에서 썼던 마스크를 펼쳐보니 땅에 떨어뜨린 적도 없는데 시커메져 있었다. 고작 2시간 있었던 내 마스크가 저런데 매일 하루에 8시간 이상씩 먼지를 들이마시는 광부들의 평균수명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무거웠던 투어를 마친 뒤 시내로 나가 포토시에서도 이어지는 퍼레이드 구경을 했다. 독립기념일 바로 전 날이라 아마 가장 규모가 컷을 이 날의 퍼레이드에는 라파즈에서는 다르게 군대, 경찰, 공무원 등 도시와 관련 있는 모든 조직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 같았다. 너무나 힘든 투어 후 배가 고파 길거리에서 파는 햄버거를 사 먹고 샌드위치까지 거하게 먹으며 구경한 후 체력의 한계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가 완전히 시내 중심에 있어서 12시가 넘은 까지 이어지는 퍼레이드 소리에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퍼레이드 소리에 얕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속이 더부룩하고 와라즈에서 장염으로 고생했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 들었다. 와라즈 때도 고산에서 트래킹으로 지친 상태에서 과식 후에 체한 듯이 아픈 것이 시작이었고 이번에도 수면부족과 고산, 광산투어의 피로가 누적된 상태에서 과식 후에 아픈 것을 보니 식중독은 아니고 소화력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과식이 급체로 이어지는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는 밤에 토를 하니 설사는 밤새 계속했지만 속은 금방 편안해졌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 아침 6시에 다시 시작되는 퍼레이드 소리에 짜증이 올라왔다. 독립기념일에 진심인건 알겠는데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었다.


원래는 아침에 도시를 더 둘러보고 늦게 우유니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몸상태가 도저히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쉽다는 생각도 금방 가실 정도로 휴식이 필요했다. 포토시에서 숙박을 하루 더 연장하고 푹 쉴까도 생각했는데 그냥 막연하게 괜찮아지겠지 생각하고 체크아웃 시간인 12시까지 누워서 얕은 잠도 자며 휴식을 취하다 바로 로컬버스를 잡아타고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속이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아 우유니로 출발하는 버스표를 사고 옆 식당에서 점심메뉴를 시켜 먹었다. 처음 보는 메뉴를 아무거나 시켰는데 고추장삼겹살 같은 요리가 나왔다. 어느 정도 배를 채웠지만 그다지 좋지는 않은 컨디션으로 모두가 남미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우유니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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