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의 남미 여행자 대부분은 우유니를 가기 위해 남미를 찾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나도 여행 영상을 볼 때 우유니 사막의 풍경에 감탄하기는 했지만 남미여행의 목적이 우유니는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마추픽추도 비슷했듯이 내 목적은 특정한 여행지보다는 장기여행 자체에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딱히 우유니를 가서 설렌다거나 하는 건 없었던 것 같다. 포토시에서 4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우유니 마을은 듣던 대로 황량함 그 자체였다. 가뜩이나 우유니는 볼리비아 다른 곳에 비해 물가도 비싸고 마을 자체에는 볼 것이 없어서 늦은 오후에는 여행자들이 모두 투어를 떠나고 거의 없다. 황토색 낮은 건물들 사이로 뻗어있는 메인 도로에는 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날리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다음날부터 진행할 투어 가격이나 알아보러 여행사를 돌아다녔다. 와카치나에서부터 동선이 많이 겹치던 한국인 부부분과 같이 첫날에는 선셋+스타라이트 투어를 진행한 후 다음날부터 차를 타고 소금사막과 국립공원을 구경하며 칠레 아타카마 사막으로 넘어가는 2박 3일 투어에 참여하기로 했다. 문을 연 거의 모든 여행사에 들어가 봤는데 제시하는 프로그램과 가격은 거의 비슷비슷해서 다음 날 동행과 나머지 여행사들을 마저 들어가 본 후 결정하기로 했다. 설사증세도 거의 나은 듯했고 여행사들 옆에 나름 한국사람 입맛에 잘 맞는다는 중식당이 있다기에 들어갔다. 메뉴에 매운 고추기름에 비빈 국수를 보고 맛있을 것 같아 별생각 없이 주문했다. 전날부터 계속 설사하는 상황에서 생각 없이 굳이 매운 음식을 시켜 먹는 정신 나간 자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고추기름 요리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밍밍한 듯하면서 별로 맵지 않았는데 먹을수록 매운맛이 누적되면서 나중에는 위와 식도가 다 쓰라렸다. 결국 다 회복된 듯했던 설사증세가 다시 시작되어 이 날 밤에도 잠을 거의 자지 못하며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3일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도착한 동행분과 남은 투어사들을 몇 개 돌아다니다 가격이 다 고만고만한 듯해서 마지막에 들어간 호다카라는 여행사에서 투어 예약을 했다. 원래는 일본사람들한테 유명한 곳인 것 같은데 이 날은 투어사 앞 예약종이에 중국계 이름이 가득했다. 원래 선셋+스타라이트, 2박 3일 투어를 각각 150볼, 850볼에 불렀는데 동행분의 흥정으로 두 개 합쳐 인당 900볼리비아노에 합의를 봤다. 나 같으면 그냥 했을 텐데 역시 남미에서는 흥정하면 웬만하면 다 통한다. 마추픽추, 우유니 투어 모두 남미치고는 비싼 가격이지만 이 정도 유명한 여행지에서 숙소, 식비 다 포함한 저 정도 가격은 유럽이나 다른 곳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다. 비행기표가 다른 데보다 비싸다고 해도 장기여행으로 남미를 오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가성비를 즐길 수 있다. 또 볼리비아는 달러부족 상태로 환전소만 잘 찾으면 달러 현금을 공식환율보다 좋게 환전할 수 있는데 이곳 우유니에서도 6.9 정도 되는 공식환율보다 높은 7.1에 환전을 진행했다. 달러를 많이 가지고 다니기가 조금 부담스러워도 남미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숙소로 돌아가 조금 쉬며 어느 정도 배탈을 수습하고 어제 갔던 중식당에서 이번에는 무난한 볶음밥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투어사로 향했다. 보통 투어 그룹의 크기는 차량에 기사를 제외하고 탈 수 있는 최대 인원인 6~7명이다. 이 날 그룹은 나와 동행까지 한국인 3명, 대만인 2명, 홍콩인 2명이었다. 확실히 남미 다른 곳, 특히 에콰도르와 페루 북부에서는 정말 찾아보기 힘들던 동양인들이지만 우유니에서만큼은 정말 많았다. 특히 서양인 관광객들은 우유니에서 바로 2박 3일 투어를 진행하는 반면 아시아인들은 사진이 잘 나오고 스케줄 조정이 쉬운 하루짜리 투어에 많이 참여해서 우리 그룹도, 소금사막에 나온 다른 그룹들도 거의 모두가 동양인이었다. 대만과 홍콩사람들은 모두 교사였는데 학생들 방학 기간에 길게 스케줄을 빼서 남미로 여행을 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일반 직장인이 보면 굉장히 부러워할 일이고 본인들도 이런 여건에 굉장히 만족하는 것 같았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낮에도, 밤에도 추운 것으로 유명해서 내복, 맨투맨 2개, 경량패딩, 목도리, 비니, 장갑 등 입을 수 있는 옷은 다 껴입었다. 마을을 출발해 달리다 보니 도로 양 옆이 어느 순간 흙바닥에서 소금으로 바뀌고 투어차량이 오프로드로 들어섰다. 투어 참가자 중에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얼떨결에 통역까지 하게 되었다. 얼마 안 가 다른 투어 그룹들도 모여있는 물이 얕게 차 있는 스팟에 도착했다. 건기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지평선까지 방해물 없이 사방으로 하얀 소금사막이 이어지는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 수 차례 시도했지만 그 분위기는 쉽게 담기지 않았다. 지금 사진들을 쭉 살펴봐도 실제 눈으로 보고 느끼는 풍경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투어 그룹이 너무 많아지기 전에 가이드의 주도로 우유니하면 다들 생각할 장난스러운 사진을 잔뜩 찍었다. 마지막에는 연속동작까지 지정해 주고 차를 운전하며 주위를 빙빙 돌면서 멋진 타임랩스 영상까지 남겨주었다. 워낙 우유니가 포토스팟으로 유명해지다 보니 가이드들도 정말 열정적으로 임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포즈를 다 정해줘도 나같이 평소에 사진을 안 찍어버릇하던 사람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단체사진 말고 개인적으로 찍은 사진들은 포즈가 정말 어색해서 어디 보여주기도 부끄러운 정도다.
한바탕 촬영이 끝나고 일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해가 지면서 소금사막의 색도 시시각각으로 변해갔다. 하얗던 소금밭이 주황색이 되었다가 해가 넘어간 후에는 옅은 박명이 한참 동안 남아있었다.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추위도 같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소금물에 서 있기 위해 고무장화까지 신고 있어서 양말 두 겹을 신었음에도 발부터 한기가 스멀스멀 왔다. 오늘은 우리 말고는 스타게이징 투어 그룹이 없는지 다른 차량들은 해가 지고 하나 둘 마을로 돌아갔다. 텅 빈 고요한 소금사막에서 별들이 뜨기를 기다리며 한참을 서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둘씩 천천히 보이기 시작하던 별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기 시작했다. 발이 너무 시려서 차에 들어갔다 나오니 5분 만에 거의 두 배는 되는 숫자의 별과 처음 보는 희뿌연 은하수까지 보였다. 평소 같으면 구름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건기의 우유니는 정말 구름 한 점 없기에 은하수가 확실했다. 정말 사방으로 탁 트이고 불빛 한 점 보이지 않으면서 바닥에 물까지 차있는 곳에서 올려보는 밤하늘의 모습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렵다. 상투적인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표현이 그나마 가장 근접하지 않나 싶다. 어릴 때 독일 베를린 외곽 조용한 마을에서 살며 본 밤하늘에도 늘 감탄했는데 생각해 보면 우유니의 반의 반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동행한 한국분께 어쭤보니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 하늘은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긴 전기가 발견되기 전에는 어디서든 밤에 이 정도로 별이 보였으니 옛날 사람들이 별자리를 생각해 냈을 것이다.
7시 30분 정도까지 별이 모두 뜨기를 기다린 후 또 포토타임이 시작되었다. 사진에 보이는 밤하늘은 장노출과 보정의 작품이고 실제 눈으로 보는 밤하늘은 사진 아래쪽 물에 비친 하늘과 비슷했다. 물론 이것도 실제로 보면 놀랄 만큼 많은 숫자의 별이다. 그리고 밤에도 역시 실제 풍경의 느낌과 분위기는 사진에 담기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어쨌거나 결과물은 멋있지만 사진을 찍는 과정은 정말 고생스러웠다. 일단 모두가 본격적으로 추위에 떨기 시작한 상태에서 장노출을 위해 25초 동안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단체사진을 몇 장 찍고 개인사진을 찍을 때는 다들 차에 들어가서 본인 사진을 찍을 때만 나왔다. 그 와중에 한 시간 동안 추운데 서서 정말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주던 가이드는 프로페셔널리즘의 끝을 보여줬다. 여행자들이야 본인들을 위한 사진이고 추우면 차로 들어가 버리면 그만인데 아무리 돈 받고 하는 일이라지만 대충 하지 않고 10장에 가까운 단체사진과 개인별로 3-4장의 사진을 성심성의껏 찍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배경이 있는 사진도 찍었는데 이건 장노출 시간 동안 가이드가 형광봉을 들고 뒤로 뛰어다니며 배경을 직접 연출해야 했다. 나중에 정말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니 본인은 일이 재미있어서 하기에 괜찮다고 했다. 최대한 차에 들어가지 않고 언제 다시 볼지 모를 밤하늘을 감상하려니 발이 시리다 못해 아파왔다. 발이 뚫리는 건 일병 때 한겨울 탄약고 이후 오랜만에 느껴봤다. 그래도 이런 걸 감수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꼭 사진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유니는 여기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지형과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어 고생을 무릅쓰고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짧다면 짧은 이 날의 5시간 정도의 투어도 다음날부터 진행한 2박 3일 투어에서는 보지 못할 풍경을 선사했기에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왜들 그렇게 우유니에 미치는지 직접 와보면 바로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