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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현 Jul 06. 2023

[세계여행] D+4 라타쿵가

의외로 매력적인 소도시


아직 시차적응 중인 탓인지 1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을 이뤘지만 1시 정도에 룸메이트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30여분 후 또 다른 룸메이트가 한 여자와 같이 들어와 짝짓기를 했다. 나름 조용히 한다고 했겠지만 규칙적인 움직임과 간헐적인 탄식이 이어졌다. 사실 뭐 불쾌하고 그런 건 딱히 없었는데 잠귀가 예민한 나로서는 그들이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잠을 자지 못한 것이 짜증 났다. 또 한 가지로는 여행 3일 만에 샌들 밑창이 떨어졌다. 전에도 한번 밑창이 떨어져 본드칠을 했던 기억이 있어서 여행오기 전에 새것을 살지 말지 고민했는데 그냥 가져왔지만 거의 실내화 대용으로 사용하며 물이 계속 묻다 보니 수명을 다 한 듯하다. 여행 시작 후 첫 번째로 버리는 물건이 탄생했다.



2023년 7월 1일 여행의 첫 번째 도시였던 키토를 떠나 라타쿵가로 이동했다. 라타쿵가는 킬로토아 트래킹을 위해서 하루만 머물 계획이고 도시 자체도 지방 소도시 수준이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킬로토아 트래킹 정보를 많이 제공해 준다는 숙소를 찾아보고 1인실과 도미토리의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서 1인실을 예약했다. 기대했던 코토팍시의 모습은 저 멀리 작게만 보였지만 가는 내내 펼쳐지는 안데스 고원의 모습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도시 간 장거리 버스 역시 잡상인들이 끊임없이 타고 내린다.



조용한 산골 소도시를 예상했지만 라타쿵가의 모습은 마치 여행유튜브에 나오는 인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사람 많고, 정신없고, 어수선하고, 그렇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중간중간 유럽 양식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가득하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실내화를 사러 나갔다. 먼저 식료품을 파는 실내시장에 들어섰는데 1층에 가득 들어선 정육, 수산 매장에서 불쾌한 냄새가 진동한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작은 식당들이 가득 들어서 있었다. 활기차게 호객을 하는 직원들과 가득 들어찬 손님들이 만드는 분위기를 지켜보려 몇 분간 벽에 기대어 그들을 관찰하는데 역시 이들도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바로 옆 건물의 의류시장으로 들어가 본다. 마치 동대문 시장처럼 층별로 코너가 나뉘어 의류를 파는 매장들이 몇백 개가 들어서 있다. 3층의 신발 매장을 돌아보다 슬리퍼가 하나 보여 가격을 물어보니 7.5달러였다. 앞 매장에서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짝퉁 크록스를 8달러에 불렀기에 괜찮아 보여서 그냥 샀다. 근데 이후에 노점에서 짝퉁 크록스를 파는 분에게 가격을 물으니 6달러란다. 신발가게에는 자매인지 친구들인지 모를 중년 여자 3명과 그중 한 명의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 여자를 가리키며 데려가라고 했다. 아마 한국을 좋아하는 소녀인 듯하다. 여자친구가 있냐고 물어서 있다고 했고 사진을 찍어달라기에 찍어줬다. 그래도 이런 즐거운 분위기와 7.5달러 눈탱이는 별개의 문제인가 보다. 역시 비즈니스를 할 때는 냉정해야 한다.


정신없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쭉 내려가면 비교적 조용한 식민지시대 양식의 건축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광장들과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있는 거리가 펼쳐진다. 도시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 마음에 쏙 든다. 그래도 며칠 더 있으면 지겨워질게 분명하기에 딱 하루 의외의 스폿으로 둘러보기에 좋은 도시 같다. 



지나가면서 냄새가 너무 좋았던 Chugchucaras라는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다시 향해 저녁식사를 한다. 8달러라는 에콰도르에서는 나름 거금인 금액을 투자한 저녁이었고 양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왔다. 왼쪽 사진에서 음식 위에 덮여 있는 것이 튀긴 돼지 껍데기인데 이를 들춰보면 고기, 엠파나다, 바나나 구이, 감자 구이, 팝콘까지 다양한 음식이 있다. 거금에 비하면 맛은 실망스러웠다. 튀긴 돼지껍질은 식용유에 담갔다 뺀 뻥튀기 같았고 고기는 매우 퍽퍽하고 엠파나다는 밀가루 맛 밖에는 나지 않았다. 양도 양이고 맛도 별로이기에 좀 남겼지만 주인에게는 너무 맛있는데 양이 많아 남겼다고 웃으며 얘기하고 계산했다.


모처럼 1인실을 예약한 만큼 앞으로 일정 정리, 글쓰기, 짐정리, 공부 등 이것저것 하려 했으나 어림없는 계획이었다. 아무리 남미의 치안 때문에 6시면 숙소를 들어온다고 해도 하루하루 일정을 이렇게 정리하기만 해도 하루가 끝나는데 여행하면서 공부하고 글도 많이 쓰겠다고 생각했던 내가 미친놈이었다. 내일부터는 3일간 킬로토아 트래킹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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