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꽁이 Oct 21. 2021

라면

10분 글쓰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데도 관련된 기억들은 왠지 찌질하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잘 못먹게 했다. 그래서 엄마가 외출하고 나면 오빠랑 몰래 라면 스프를 뜯어서 검지손가락에 조금씩 묻혀 먹었다. 끓여먹으면 냄새로 들킬까봐 나름대로 머리를 썼던 기억이다.

라면 사리만 들어있는 봉지를 보고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엄마라면, 내 자식이 그랬다면 좀 웃겼을 것 같다.

오빠랑 내가 하도 라면 라면 노래를 불러서 가끔씩 엄마가 큰맘 먹고 라면을 끓여줄 때는 양파를 잔뜩 썰어넣었다. 그러면 국물이 달짝지근해지는데, 그래서 나는 라면이 원래 살짝 달달한 음식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라면은 매콤하고, 짠맛이 주로 나는 음식이다.


지금은 급하게 점심을 떼울 때나 김밥만 먹기 아쉬울 때 라면을 끓인다. 솔직히 더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엄마는 왜 그렇게 만들었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웃기도 한다. 어떻게든 건강을 챙기려는 엄마의 노력이 뒤늦게 귀엽다.


그런데 진짜 만약에 누가 나를 납치해서 죽기 전에 한 가지 음식만 먹게 해준다고 하면.. 난 양파를 잔뜩 썰어넣은 라면을 끓여달라고 할 것 같다.

어떤 마음은 어떤 그리움은 절대적인 취향을 능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이 밤의 기대를 접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