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망꽁이 Oct 21. 2021

온수

10분 글쓰기(2)

처음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쨌거나 나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었으니까.

대출승인, 이사, 계약서 같이 중요하고, 또 그만큼 복잡다단한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게 먼저였다.

다음날 어디에서 눈을 뜰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비하면

온수가 안 나온다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았던 거다.


대성가스에너지 홈페이지에는 가스 설치를 원하면 최소 3일 전에 신청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때는 화요일이었고 나는 토요일로 날짜를 지정했다.

그리고 지금이 여름의 초입이라는 것에 마음 깊이 감사했다.


창문 없는 화장실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는 걸 안 것은 정확히 24시간 뒤의 일이었다.

두피에 닿는 물의 온도에 나는 당황했다.

하지만 먼지투성이인채로 자는 것은 내 신념을 배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찬물을 손에 묻히고 손의 온도로 물을 미약하게나마 미지근하게 만든 후에

계곡에 들어가기 전, 심장과 먼 곳에서부터 물을 묻힐 때처럼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품칠을 하고 눈을 질끈 감은 후 정확히 10초 만에 온몸에 묻은 비누끼를 씻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와 존나 춥다’


다음날 같은 시각, 나는 근처에 사는 친구네 집으로 찾아갔다.

“온수 좀 베풀어주시겠어요?”


샴푸가 어떤 제품이든 상관없었다.

친구가 클렌징 폼 없이 오일로만 클렌징을 하는 것도 처음 알았다.

샤워기 아래서 내 몸은 이틀 만에 자유를 찾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온수는 따뜻한 물. 따뜻한 물은 온수.

온수를 표현할 말 가운데 가장 적합한 말은 ‘따뜻한 물’.
이 세상의 모든 한자어는 가장 솔직하고 명료한 뜻을 담고 있구나 깨달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