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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구름 Feb 23. 2023

김 선생, 아니 김 부장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기억할게. 

얼마 전 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 선생님이 인근 타 시군으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그 친구는 교대 후배로 인천에서 타시도 전입을 통해 경기도로 넘어왔는데 전입을 온 당시 내가 교무부장을 하고 있었던 터라 전입 올 때부터 밝은 표정과 귀여운 외모(?)로 반갑게 인사하던 모습이 참 좋았다.  그렇게 첫인사를 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3년이라는 시간을 근무하고 집이 가까운 광주하남지역으로 전출을 가게 된 것이다.


 이 친구가 우연히 나의 브런치 글들을 보고는 송별회 때 지나가는 말로 '부장님, 그 후배 김 선생으로 글 하나 써주세요.'라고 귀여운 요청을 하길래 흘려 들었지만 나도 이 김 선생이란 후배(이후 김 선생이라고 칭한다-지금은 김 부장님이지만)와의 추억이 좋았어서 그 김 선생의 이야기를 한번 써볼까 한다.


 나와는 2년간 같은 본교에서 근무하고 마지막 1년은 내가 본교에 속한 분교로 옮기게 되어 마지막 1년은 가끔 본교 출장을 가거나 개인적으로 시간 내어 만나지 않으면 안 되었기에 같은 학교 근무할 때처럼 매일 만나지는 못했다.  물론 학교를 옮겨서도 나도, 김 선생도 서로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을 없지만 소위 케미가 잘 맞았던 김 선생과의 생활이 즐거웠기에 가끔 생각나기도 한다.


훌륭한 김 선생의 장점 


1. 안녕하세요?  인사 한마디.

   작은 학교 교무실에서 교무부장이었던 나는 아침 교무실에 출근하여 그날의 일들의 체크하고 1교시 수업을 준비하여 체육관과 과학실로 수업하러 가는 바쁜 오전을 보냈다.  그 잠깐의 오전시간에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리 교무실로 와서 교감선생님이나 나에게 "교감선생님, 부장님. 커피 드셨어요?"라고 물어보며 함께 달달이 커피믹스를 함께 타먹으며 소소한 어제의 이야기, 학교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좋았다.  

 오해는 마시라. 예전처럼 후배가 타주는 커피나 따박따박 받아먹는 옛날 꼰대 부장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나도 많이 타 줬다. 커피.  아님 커피는 김 선생이 뜯고 나는 뜨거운 물 타고 했지. 

 

 아이들에게도 항상 인사 잘하라고 가르치는 선생님이지만 실제 학교 근무하는 관리자나 선, 후배 선생님들과 많은 교직원들에게 인사를 그리 잘하는 사람은 많이 보질 못했다.  나 역시 인사란 비용을 들이지 않고 나를 업그레이드시켜주는 일이라 생각하고 인사를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김 선생은 참 인사를 잘했다.  지나가는 학생들과도 청소하시는 여사님에게도, 학교에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님에게도 인사를 마음을 담아 나누는 모습이 좋았다.

  특히 아이들과는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를 정해 항상 사랑합니다를 외쳤으니 그 반은 사랑이 실제로 넘쳐났다.  그렇게 사랑을 준 아이들을 5학년때 맡아 6학년까지 연이어 2년을 가르치고 마지막 졸업식에서 자기가 제일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없이 어떻게 교사가 되었겠느냐마는 이 친구는 제자 사랑이 특별하고도 남달랐다. 인천지역에서 근무할 때부터 자기 학급의 아이들에게 학급비로 팀조끼를 구입해 입히고 아침부터 하교 시까지 계속 입게 하면서 반 친구들의 소속감을 키워주고 담임인 자기도 그 팀조끼를 출근해서부터 퇴근 때까지 입고 근무했으니 웬만한 유난은 괜찮다고 느끼는 나까지 '저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자기가 좋아하고 아이들도 싫어하지 않았으니 그럼 된 거 아닌가 싶다. 특히 동학년이 여러 학년이었으면 다른 반과의 형평성이나 균형도 중요하기에 권하고 싶진 않지만 한 학년밖에 없고 또 교실이 따로 떨어져 있는 반이다 보니 학교에서의 튐도 어느 정도는 완화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나보고 입으라면 못 입을 것 같다.  나에게 맞는 팀조끼도 별로 없을 것 같고.  


2. 친화력이 탑급

김선생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낯을 많이 가리지 않는 성격인 걸 바로 알았다.  처음 전입온 학교에서는 아는 사람도 없기에 쭈뼛쭈뼛 교무실 한편에 서있거나 멀뚱히 내 할 일을 못 찾고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있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친구는 처음 본 나에게도 스스럼없이 질문하고 이야기를 던지는 특유의 친화력이 있었다.  이후 학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면들이 김 선생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반 아이들과도 충분한 래포(좋은 관계 맺음)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던 것 같다.  그러한 친화력 덕분에 쉬는 시간, 중간놀이 시간, 방과 후에도 항상 김 선생 옆에는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재잘대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이 진정한 좋은 선생님이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선생님이 좋은  선생님은 아닌 거 같다. 

 하지만 박수도 두 손이 마주쳐야 짝 소리가 나는 법. 내가 학교를 옮긴 뒤 나와의 케미 정도인 사람은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걸 봐서 나의 친화력도 만랩인가 하는 생각이.. 


3. 유머러스와 재치로 무장된 센스

연애를 할 때 남자의 매력 중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보이는 겉모습보다는 그 사람의 재치와 유머러스함이 더 중요하다는 글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김 선생은 유머와 재치의 센스가 겸비되어 있었다.   쿵하면 짝하는 그런 맛.  그런 센스와 재치는 하룻만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책으로 본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소통 속에서 갈고닦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항상 엄숙하고 경건한 모습만 보이는 사람이거나, 우울한 사람이거나, 말할 때 가시가 돋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보다는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더 밀접해지고 떡 하나 더 주는 법이다.


4. 운동화 신은 뇌

 김 선생은 나와 나이 차이가 한참인 동생이지만 같은 교대 후배이기도 했고 중고등학교 때 운동(종목도 육상으로 같았다)을 잘했던 (나는 서울 지구별 대회정도지만 이 친군 전국체전까지 나간 이력이 있다) 경험이 비슷하기도 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존 레이티 교수가 쓴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에도 운동을 하면 뇌 속의 신경전달 물질이 활성화되어 공부도 잘하고 집중력, 성격도 좋아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운동을 했다는 것은 건강했다는 것이고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처럼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있었던 점이 바람직했다.  

일부 사람들이 운동하는 사람들은 공부 못한다는 인식도 나나 이 친구를 보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운동도 잘하고 열심히 하여 소기의 성과도 거두었지만 그런 머리로 공부도 잘했다는 것이다. 김 선생은 실제 성균관 대학교 공대를 다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교대를 다시 간 케이스인데 임용 시험도 충청, 인천 두 군데나 합격을 한 것을 보면 열심히 운동한 덕에 뇌의 신경 전달물질이 엄청 활성화된 듯하다.  


5. 긍정적인 마인드

 김 선생은 내가 뭐를 하자고 하거나 함께 이런 걸 할래? 하면 그것이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었다.  누구나 일하기보단 쉬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자기 일도 바쁜 와중에서도 내가 믿고 쓰는 김 선생에게 '지금 바쁜가?' 하면 뭐 시킬 일 있으신지 단번에 알아맞히는 혜안도 있었다.  학교에서는 기피업무들이 있다. 학교폭력업무, 소위 마당쇠업무인 체육업무들이 그렇다.  한참 체육을 열심히 하다가 교무부장일을 함께하면서 초빙교사였던 덕에 체육업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쁜 와중에 체육 계원이 되어주어서 참 많이 도움이 되었다.  체육관에 가자고 하면 같이 가고, 정리할 게 있으면 같이 정리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그 힘든 일들을 긍정적으로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김 선생은 안 그랬을까 싶지만 아마도 김 선생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일만 부려먹은 나쁜 부장은 아니었다.  밥도 여러 번 사줬다. 고기는 참 잘 먹는 김 선생이다. 


6. 이시대의 좋은아빠이자 애처가

 김 선생은 결혼하여 이제 세 살 된 아이를 키우는 어엿한 아빠이기도 하다.  젊은 사람들의 육아가 어찌 안 힘들까마는 김 선생은 일반직 공무원인 아내와 함께 아이 키우는 일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었다.  가끔 일과 후 전화를 할 때면 항상 아이를 보고 있는 중이거나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가거나, 아이를 데리러 가거나, 데리고 오거나였던 때가 많았다.   교사와 공무원 부부사이에 육아가 어느 누구의 한 임무가 아님에 서로 노력하면서 아이를 키워내는 모습이 한편으로 기특하기도 하다. 

 가끔 약속을 잡고 술 한잔 할 때는 함께 자리한 사진까지 친절하게 찍어 전송하는 그가 이 시대의 참 애처가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요즘 시대를 살아야 하는 남자의 숙명이 조선시대와 비교해서 조금 더 힘든 일이 아닌가 싶다.   이런 글 보면 페미니스트들이 들고일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나는 오늘도 모닝커피와 크림수프를 준비하고, 강아지 야간 산책과 음쓰 처리와 분리수거를 철저히 한 대한민국 대표 애처가이다.


7. 돌쇠도 이기지 못하는 성실함과 책임감

 김 선생은 참 성실하다.  아침에 새벽에 출근하는 몇 안 되는 선생님이다.  멀리 광주에서 여주까지 출퇴근을 해야 하는 이유도 있지만 보통 출근시간이 8시 40분인 학교에 7시에서 7시 30분 정도에 학교에 와서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학급일이 하는 김 선생은 참 성실한 사람이다.

 연구나 교무부장을 오래 했던 나도 웬만해서는 초과근무를 많이 하지 않았는데 김 선생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8시고 9시고 학교에 남아 초과 근무를 하고 일처리를 마무리하는 책임감이 있었다.  같이 근무할 때에는 이런저런 학교 관련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 것들을 부탁할 때도 '못한다.' '안된다.'는 말없이 '제가 해볼게요' ' 제가 당연히 해야지요'라며 많이 도와주었다.  참 고맙기도 하다.  그래. 고기 좋아했지. 암만. 


8. 의리파 김 선생

 학교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있지만 우리 학교에는 공익근무요원이 근무하고 있다. 그들의 역할은 특수학급 학생들의 안전한 수업과 활동을 위해 이동시 도움을 주고 학교에서 하교할 때까지의 학생 관리를 하는 일인데 같이 근무하고 있을 당시 근무한 공익근무요원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 친구 의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저녁식사나 술을 사주기도 하는 등 선배, 형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김 선생에게 훌륭한 선배, 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또 학교에서 친목회의 일을 할 때 힘들고 귀찮은 일이지만 친목회 총무 역할을 맡아줘서 2년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시 한번 외쳐본다.  김 선생! 의리!


이외에도 김 선생의 장점과 칭찬할 점은 많지만 이쯤에서 정리하려고 한다.  요즘의 시대 흔치 않은 김 선생 덕에 나도 즐겁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 선생은 이제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업무와 역할을 맡아 더 훌륭한 선배, 부장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또 새로운 사람들과 김 선생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 하면서 가정에는 행복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바라본다. 


김 선생. 아니 김 부장님. 이 정도면 멋진 마지막 인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그와 함께 기울이던 소주 한잔이 그립다.


또 만나자고. 김 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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