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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구름 Jun 04. 2023

군대와 학교

교단일기 11  (자료화면: 티빙 오리지널 방과후 전쟁활동 화면 )

1999년 8월 18일. 나는 수원의 화서초등학교라는 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2년 6개월간의 정훈공보장교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나는 새로운 학교로의 출근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군생활이라는 것이 다들 알고 있듯이 상명하복의 절대복종 사회였기에 무척 권위적인 직장이 내 첫 직장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권위적이었느냐 하면 대대장님께 보고를 위해 대대장실에 들어갔다가 유리 재떨이가 날이 와서 죽을뻔했다는 말이 정말 거짓말이 아닐 정도로 직속상관인 대대장님(나중에 연대장님은 더했다)은 무서운 존재였고 두려움의 존재 그 자체였던 것이다. 물론 처음 자대 배치받고 온 신임 소위에게 군기를 잡으려고 그러셨기도 하였다고 생각된다.  전입 후 얼마 안 되어서 부대 간부 회식에서는 그래도 새롭게 배치받아 온 정훈장교를 잘 챙겨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그래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또 같은 부대 소대장이었던 동기들과의 사이가 좋아서 훈련과 교육이 없는 주말에는 시내에서 맥주도 한잔 마시며 어려운 군생활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첫 직장이었던 부대와 두 번째 직장인 학교가 제일 달랐던 점은 모든 선생님들이 무척 평등한 관계였다는 것이었다.  나이가 지긋했던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부장선생님들은 나보다도 적게는 10여 년, 많게는 30여 년 선배님이었지만 항상  새내기 선생님이었던 나를 존중해 주시고 존대해 주시는 모습에서 문화 충격을 받았었다.   물론 사적인 자리에서는 편하게 대해 주시고 선배로서 여러 가지 좋은 말씀과 교육자로서의 삶에 대하여 많은 조언을 해주시기도 했다.  같은 공무원 조직이지만 무척 이질적인 두 조직을 겪었다 보니 지금 생각해 보면 상명하복의 문화가 몸에 배어 있던 군 출신 선생님들을 관리자나 선배들이 무척 좋아하시고 인정해 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교대 출신 학군단 (ROTC) 3기이니 더욱 그렇기도 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교대에 RNTC라는 제도가 있었다. 그 제도는 교대 지원율이 낮은 남학생들의 유인책으로 학군단교육처럼  학교를 다니는 중에 입영훈련 및 군사훈련을 받고 졸업과 동시에 하사관(지금은 부사관)중 하사 계급을 달고 자동 전역하게 되는 것인데 졸업 후 부대로 임관되어 근무하는 대신 공무원인 학교 교사가 되어 5년 이상 근무를 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 있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3년 윗 선배들은 군대를 가지 않고 졸업과 동시에 군복무를 교직생활로 대치하여 군대에 가지 않았던 남교사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91학번인 선배들부터 대학교련과 RNTC 제도가 사라지면서 학군단이라는 ROTC 제도가 생겨 교대 학군단에 지원하거나 병무청에서 배정받은 급수에 따라 현역으로 복무하거나 상근예비역, 공익근무요원 (지금은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개인 병역의 의무를 해결해야 했다.  나는 나의 큰외삼촌께서 ROTC 7기 선배님으로 베트남 전쟁까지 참전하시고 수방사 헌병 소령까지 복무하시고 전역하셨기 때문에 가족들과 상의하여 학군단에 지원하였고, 경인교대 학군단 3기 (전체 학군단 기수로는 35기)로 입단하게 되어 2년간의 입영훈련과 군사교육을 받고 훌륭한 성적으로 소위 임관까지 하게 되었다. 

 군생활을 하는 동안은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장교로 군생활 한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아직까지도 학군단 동기회, 총동문회등의 일도 하고 있는 정도라 학군단에 대한 애착이 무척 많다고 할 수 있다.  몇 해 전부터는 경인교대 학군단 후배들이 입영훈련을 받는 문무대에 대학 총장님과도 함께 위문하기도 하였고 총동문회 자체적으로도 열심히 훈련받는 후배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자리를 꼭 만들려고 한다.  지난겨울에도 문무대에서 열심히 훈련받는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총 동문회장님과 함께 다녀왔는데 지금 훈련받는 대학 2학년 (3학년 입단예정자)들이 내 첫째 딸과 같은 나이라는 것을 알고는 참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하고 생각했다.  벌써 내가 군생활 한지가 23년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군대 시절의 기억이 또렷해서 한번 놀라고 23년간 학교에서 교사로 지내왔다는 것이 또 한 번 놀랍다.

 군대에서는 동기들이 편하고 의지가 되어 견딜 수 있었다면, 학교에서는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무척 중요하다.  좋은 동학년, 좋은 동료교사를 만나야 학교생활에서 겪는 수업, 학생지도, 학부모 관계, 학교 교직원들과의 관계등에서 오는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다. 동학년이나 작은 학교 같은 경우 동료교원들의 관계가 좋으냐, 안 좋으냐에 따라 학교생활의 일 년이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나는 운이 좋게도 좋은 동학년, 좋은 선생님들과 만나 좋은 영향을 받으며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고 본다.  나 혼자 동동거린다고 지금까지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순 없었을 것이다.  좋은 선배님의 가르침, 좋은 후배들의 지원과 도움들이 있었으니 어려운 학교 생활에서도 꿋꿋하게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의 조직문화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이 MZ 세대들일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것처럼 맑은 눈의 광인이 되어 자신만의 세계를 살고 있는 후배들을 아직까지 보진 못했지만 제발 그 맑은 눈을 거두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선배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듣고 좋은 선생님이 되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 주길 바란다.   물론 도움이 안 되고 짐이 되는 선배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선배에게도 술 한잔 사줄 수 있는 지갑은 있으니 잘 얻어먹으면 되겠다. 

 선배세대와 후배세대의 갈등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이다.  몇천 년 전 고대 유적에도 ‘요즘 것들은 말을 안 듣고 버릇이 없어’라고 쓰여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처럼. 

 선배들이 하는 레퍼토리 중 하나가 너희는 안 늙을 것 같냐? 하는 것인 것처럼 후배들도 선배들 보기를 꼰대로서만 보지 말고 같은 학교라는 조직아래에서 열심히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동반자라고 생각해 주어야 한다.  코로나 19로 인한 원격 수업 등,  ICT와 원격화상수업등 젊은 사람에게 배워야 할 것들도 많아졌지만 오랜 경력과 교직생활 경험에서 오는 지혜는 우리 젊은 후배선생님들이 배워야 할 중요한 유산이기도 하다. 

 군대시절도 힘들었지만 요즘은 아이들 가르치는 것도 힘든 세상이다.  각종 민원과 괴롭힘으로 극단의 선택을 하는 선생님들도 있다는 뉴스 기사를 가끔 접할 때 조금은 더 따뜻한 마음으로 학교를 바라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선생님도 학생이었고 또 귀한 집 자식이다.


군대도 학교도 힘들긴 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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