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23
한 달 동안 새로운 경험을 했다. 매일 저녁 10시쯤 내방 컴퓨터를 켜고 하루를 정리하면서 몇 자를 적어가면서 23개의 글이 그럭저럭 남았다.
우연하게도 23년간의 교사생활처럼 23개의 글이 써지게 되었다. 며칠간의 퇴고의 시간이 있겠지만 엉터리로 써 내려간 글이 새삼 부끄럽기도 하다. 그래도 기준 이상의 글쓰기를 실패하지 않고 해냈다는 것에 위안을 삼으며, 글을 마무리 함에 감사함을 느낀다.
부끄러운 글쓰기를 하면 할수록 글을 쓰는 작가의 대단함을 느끼게 되었고 나의 미천한 글쓰기 실력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담담하게 글을 쓰고 싶었으나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나의 어지러운 머릿속 생각에 따라 중언부언하며 웅얼거린 글들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마침 학교에서도 학부모 상담주간이 이번주여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의 학교에서의 삶과 23년간의 교사 생활을 돌아보기도 하였고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기는 얼마나 힘든가에 대하여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된 기회가 되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이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지금까지 생활했던 것처럼 많은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학교 업무로 정신없이 살고 있었다면 이런 돌아봄도 생각지 못했을 것 같다.
다행히 승진이라는 성취도 이뤘고 행복하고 평화로운 분교에서의 교사 생활을 하고 있기에 이런 글쓰기에도 도전을 할 수 있어서 그 점도 너무 감사한 일이다.
오늘은 아내와 큰 아이와 함께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들러 책들을 둘러보게 되었다. 나름 나도 작가가 된 마냥 다른 작가들의 많은 책들을 이리저리 들춰보고 목록을 살펴보면서 내가 경험한 것조차 어떤 식으로든 글로 써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수많은 책들을 살펴보다 보니 저마다의 글 속에서 작가들의 힘이 느껴지는 것 같아 나의 끄적거림이 또다시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떠한 목적을 갖고 낸 것이 아닌 나의 소박한 생각들을 정리하는 글들이 어쩌면 나에게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조만간 세상에 나와 살짝 얼굴을 내밀 나의 작고 소중한 책이 나의 첫 작품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레기도 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줄 용기가 나진 않는다. 하지만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몇 권을 더 만들어서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는 읽을 기회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알기에 나의 생각을 적은 글을 조금은 이해해 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다지 고집이 세진 않았다. 그래서 특히 삶에서 크게 부딪히거나 어떤 상대와 갈등을 심하게 겪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런 삶이 가끔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유부단함으로 비쳤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 그런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난 평화주의자라고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저마다의 의견과 생각이 다른 것이 당연하고 나의 삶이란 것이 전쟁터에 나가 생사를 오가는 일들이 아닌 이상 그렇게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다름으로 인한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공유하고 맞춰나간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다. 때론 배려해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내 생각을 잠시 접어 두어야 하기도 한다. 그 일이 그래도 나에겐 그리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조금 손해 보고 조금 억울해도 세상 살아가는데 별다른 지장 없다는 게 내 경험의 결과인 것 같아서 감사하다.
한 달간의 도전이 나에게는 새로운 활력소가 되었다. 책이라는 뭔가 목적을 위해 달려왔다기보다는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면서 정리되지 않았던 내 머릿속을 어느 정도 빗자루질도 하고 정리함에 정리도 조금 한 느낌이다. 아직 생각들을 반듯하게 정리하고, 차곡차곡 구분해서 쌓아놓거나, 깨끗이 닦아 광내고 빛내는 것에는 한참 부족하지만 또 이렇게 정리를 한번 하고 나면 더 멋진 인생이 되도록 한 걸음 디뎠다는 자부심은 생길 것 같다.
어찌 보면 보잘것없고 많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한 사람이지만 그동안 나를 도와준 가족들과 친구들 주변 동료들과 선후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컴퓨터 자판을 늦은 밤까지 두드려 몇 자 적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앞으로의 일들은 아직 오지 않았고 지나간 일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지금 현재를 행복하고 즐겁게 살면서 노력하면 그 행복들이 모여 나의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진 행복한 삶이었다고 평가하고 이제 반환점을 돈 내 인생의 후반전을 새롭게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이제부터 해 나가야 하겠다.
교사이든 교감, 교장이 된 이준호든 그 이준호 이름 앞에 붙은 직함이 내 삶에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 이준호가 되어 즐겁고 행복하게 삶을 살기를 바란다. 또 이 땅의 수십만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이제 작고 소중한 나의 글 쓰기를 이쯤에서 정리하려고 한다. 나에게 주어진 앞으로의 교육자로서의 삶이 지금까지 교육자로 살아온 날보다 더 길진 않겠지만 이제 반환점을 돌아 첫발을 내디딘 마라톤 선수처럼 새로운 다짐으로 인생 후반기를 기약해 본다.
행복한 교육, 그 이야기 속에 내가 있기를
나도 행복하기를.